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작가의 우정편지] 시인 김선태가 시인 이재무에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작가의 우정편지] 시인 김선태가 시인 이재무에게

입력
2006.11.29 23:54
0 0

친애하는 재무 형께

오늘은 목포 바닷가에 나가 낚시질을 하였습니다. 종일토록 늦가을 찬바람만 낚았습니다. 일몰의 선창 주막거리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컬컬한 재무형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전화번호를 누르려다 집에 돌아와 편지를 씁니다.

재무형, 형과 제가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시와사람> 여름시인학교 때로 기억됩니다. 시인과의 대화를 마친 후 뒤풀이에서 우리는 번개 치듯 술잔을 나누었지요. 그리고는 거칠 것 없는 형의 말씀을 안주 삼아 우리는 금방 형과 아우가 되었습니다. 시를 쓰는 도반(道伴)으로서 우리의 만남은 이렇듯 많은 시간과 절차가 필요치 않았지요.

이후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한없이 이끌렸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서로를 끌어당겼을까 생각하니 ‘촌놈’이라는 단어가 주저 없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전라도 강진 촌놈인 제게 형은 영락없는 충청도 부여 촌놈이었습니다. 그냥 촌놈이 아니라, 소탈하고 가식이 없는 촌놈이었습니다. 넉넉하고 틈새가 많은 진짜 촌놈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난과 젊은 날의 아픔을 등에 지고 서울에 정착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닌 파란만장한 촌놈이었지요.

그러나 재무형, 겉모습과는 달리 형의 마음 깊은 곳에 얼마나 큰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저는 압니다. 용감하고 꿋꿋한 형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상처와 허기가 그늘을 치고 있는지도 압니다. 춥고 황량한 서울에서 더는 버티기가 힘들다며 늦은 밤이면 전화를 걸어 흐느낄 때 제가 오히려 울적해져서 술을 마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때로는 보고 싶다고 한밤중에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목포까지 내려오는 느닷없는 일탈은 또 어떻고요. 형의 가슴 저변에 켜켜이 쌓인 따뜻함에 대한 갈망과 근원적인 그리움의 실체를 같은 촌놈이 아니고서야 남들이 어떻게 이해나 하겠는지요.

최근에 모처럼 형에게 좋은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제 일처럼 기뻤습니다. 제1회 윤동주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니 개띠 해가 그냥 지나가지는 않나 봅니다. 그토록 황망한 삶을 살면서도 시 쓰는 일만큼은 치열하기 그지없는 형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천성이 게으른 저도 형의 그런 열정을 보면서 좋은 시를 쓰겠다고 다짐합니다.

재무형,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오려는지 목포의 바닷물 색깔이 심각합니다. 새해가 되면 지천명에 드는 형을 위해 시만큼 건강도 챙기시라는 부탁 말씀 올리면서, 그리고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2006년 11월 17일 목포에서 김선태 올림.

♡ 김다은의 우체통

김선태 씨는 몇 년 전 비평가 이경호 씨와 사소한 오해로 반목하게 되었다. 20년 동안 유지해온 선후배 관계에 금이 가면서 서로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자 화해는 점점 불가능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악역을 자처하고 나선 이가 이재무 씨. 그는 끈질기게 두 사람의 화해를 시도했고, 급기야 김선태가 있는 목포까지 이경호를 데려왔다. 그들은 목포 바닷물을 바라보며 소주를 마셨고, 여태 쌓인 앙금들을 “사나이답게” 털어내 바닷물에 흘러 보냈다.

이후로 세 사람은 서로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김선태는 “재무 형에게 빚이 있으니, 그를 위해 악역을 해야 할 기회가 있으면 기꺼이 할 것”이라고 했다. 한번 싸움으로 두 명의 붕우(朋友)를 너끈히 얻는 문학인들의 반전(反轉). 그래, 그런 싸움은 한번쯤 해봐도 좋을 것 같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