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장들이 얼굴이라도 한번 보기 위해 사무실 밖 간이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했던 자리. 정부가 시장의 역할을 대신하던 개발경제 시대에 관료 사회에서도 가장 힘있는 국장 자리 몇 개를 꼽을 때 꼭 빠지지 않는 요직 중의 요직, 바로 재무국 이재국장이다.
은행 등 1,500개 금융기관의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대출 및 재벌 여신관리 등 한국경제의 돈줄을 쥐락펴락 했던 자리였다. 재무부 출신을 마피아에 빗대 부르는 '모피아'의 중추이자 관치금융의 상징이었다. 재무부 출신으로 장관이나 경제 부총리에 오른 이들의 상당수가 이재국장 출신이다.
▦ 그 이재국장에 해당하는 자리가 현재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다. 금융회사에 대한 인허가 권한과 감독기능이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넘어가면서 화려했던 위상이 퇴색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금융정책과 제도를 쥐고 있는 힘 있는 자리다. 검찰이 외환은행 헐값매각사건을 변양호 당시 금융정책국장이 주도한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고 한다.
어떻게 외환은행 매각 같은 국가적 현안이 일개 국장 선에서 결정될 수 있느냐는 당연한 문제 제기에 대해 검찰은 "금정국장이라는 자리의 전문성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을 했다.
▦ 변 전 국장은 엘리트 집단이라는 재경부 내에서도 스타로 꼽히던 유능한 인물이었다. 금정국장 시절이던 2001년에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해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15인에 선정될 정도로 기대를 모았다.
이 신문은 그를 외환위기 해결의 주역이자 기업구조조정의 해결사라고 소개하면서 솔직하고 직설적 성격으로 관료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출세가도를 질주하던 그가 올 8월 현대자동차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이번에는 론스타 헐값 매각의 몸통으로 지목됨으로써 국가관도 없는 부패관료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 아직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론스타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는 걱정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변 전국장 개인 주도로 헐값매각이 이뤄졌다는 기본구도는 검찰 스스로 인정하듯이 당초 설정과는 전혀 다른 결과이다.
헐값 매각 과정에 론스타가 간여한 혐의는 드러나지도 않았다. 수사과정에서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노력보다는 피의자에 대한 구속 여부에 집착하며 힘을 낭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사인인 만큼 한 점 의혹이 없는 완벽한 수사결과를 내놓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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