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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23년의 실기(失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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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23년의 실기(失機)

입력
2006.11.2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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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가 발이 편안한 스케이트화를 만들기 위해 일본으로 간다는 기사를 보면서 2년전 취재한 구두 장인과 연구원이 떠올랐다.

조충남씨는 1960년부터 구두를 만들었다. 1970, 1971년에는 상공부가 주최한 세계우수상품 시작품 경연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해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씨의 신발을 만들기도 했다.

이 대회는 해외 명품을 따라잡기 위해 명품과 흡사한 제품을 만들어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로 생겨났다. 이 대회를 통해 한국인이 손재간만은 이탈리아 장인에 못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 기본연구는 일본보다 빨랐지만

그러나 명품 구두는 장인의 손재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재도 좋아야 하고 고유의 아름다운 디자인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발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구두의 본이 되는 골(뼈대틀)이 다양하게 있어야 한다.

당시 대회는 장인은 발굴했으나 나머지를 연결시켜 산업화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동네마다 있던 맞춤구두 가게는 사라져가고 기업형 구두산업이 발전했다.

조씨 역시 이 상을 받았을 때 이미 구두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대량생산 구두로 수제화보다 비싼 값을 받는 그 회사는 고가의 명품을 개발할 의지는 없었다. 더구나 한국인의 발 모양에 맞는 골 연구는 기업 혼자서 하기 힘들었다.

두번째 기회는 1983년에 왔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 국산 수제화를 신고 따라나섰던 부인 이순자씨는 발뒤꿈치가 까져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고급 구두가 이 정도면 서민 구두는 오죽하겠냐며 한국형 구두모델을 연구시켰다.

한국과학기술원(KIST) 전산개발실장이던 조맹섭씨가 맡아 전국을 돌며 2만명의 발 모양을 조사하고 외국사례도 수집했다. 당시 그를 맞은 일본의 연구원은 일본에도 그런 연구가 없다며 놀라워하더라고 했다. 그는 그 결과를 토대로 한국인 발 모양의 기본틀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기본형을 토대로 다양한 골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후속작업은 뒤따르지 않았다. 구두 산업의 틀을 잡아보겠다고 애쓰던 조씨는 "이러다가 나부터 굶어죽겠다" 싶어서 87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전공조차 디지털 색상보정으로 바꾸었다. 일본보다 먼저 한국형 구두의 틀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23년 동안 후속 작업을 손놓은 결과가 바로 김연아 선수의 일본행은 아닐까.

장인은 발이 편하게는 만들어도 아름답게 만들지는 못한다. 당시 수제화 장인들이 활용할 공동의 디자인개발실이 있었다면 아마도 한국의 수제화 가게는 모두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발이 편한 것보다는 모양이 세련된 구두를 선호했고 장인들의 작품은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시로는 세련된 구두를 만들었던 제화 3사는 이제는 발이 편하고 디자인도 멋진 외제 명품에 밀려서 고전하고 있다. 기본을 버린 결과 장인도 구두산업도 모두 죽었다.

장인학교라도 있어서 기술을 전수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는 또 수공업에서 발전한 기술을 무시했다. 학교는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주류였으니 실기가 위축되었다. 이 점은 지금도 그렇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직물학과를 나오면 '예술적인' 타피스트리는 만들어도 카페트 한 장을 만들지 못하며 가구학과를 나와도 '예술적인' 가구는 디자인해도 쉐이커 의자 하나를 만들지 못한다.

● 돈 택해 잃어버린 명품 기술

그나마 구두는 대통령 부인의 체험으로 한때나마 반짝 연구라도 되었지, 연구조차도 없이 스러져가는 분야가 더 많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제대로 된 가구를 만들던 목수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반면 외제 수제 가구는 고가에 수입되어 인기를 끈다.

집에 있는 공장제 가구 서랍을 빼보기 바란다. 서랍이 본체보다 짧아서 뒤쪽에 빈 공간이 생길 것이다. 가구전문가 말로는 이 크기로 서랍을 만들어야 공장에서 자투리 나무가 남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수제가구나 외국산 가구는 서랍이 서랍장의 끝까지 들어간다. 기업이 나무를 아끼기 위해 소비자들이 못쓰게 된 자투리 공간이 바로 한국사회가 눈에 보이는 돈과 성공을 좇아 놓쳐버린 최고의 영역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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