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한국 TV의 '전지구화'(globalization)가 진행 중이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이제 한국 TV 드라마의 인기는 한국과 아시아라는 '지역'을 넘어 북미와 중남미까지 그야말로 '글로벌'(global)하게 뻗어나가고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한국 TV의 소위 '글로벌 텔레비전'(global television)으로의 진화를 더 실감할 수 있다.
지상파, 케이블 할 것 없이 미국에서 수입된 다양한 외화 시리즈와 리얼리티 쇼, 익스트림 스포츠 프로그램들로 넘쳐난다. 거기에 일본과 중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주로 방영하는 전문 채널들까지 등장하는 판이니, 가히 한국의 TV는 자국산 프로그램 말고는 관심조차 없는 미국의 TV보다 오히려 더 글로벌 하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글로벌 토크 쇼'를 표방하는 KBS <미녀들의 수다> 라는 프로그램의 등장은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글로벌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TV 지형에서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글로벌" 운운하는 프로그램 한 두 개가 늘어난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달라질까. 미녀들의>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상정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 표상하는 "글로벌"이란 것이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아니 매우 심각하다.
우선 일요일 아침 시간에 편성된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수가 공식적으로 40만 명이 넘어선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본 한국, 한국인, 한국 문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시청자들은 아마도 글로벌과 로컬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기는 문화적 차이 혹은 우리 사회가 이제 포용해야 마땅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 토크쇼의 질료가 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온 20~30대의 젊은 미혼 여성들을 출연시킨 이 프로그램은 그러한 기대를 철저히 배반한다. 진행자와 한국 남자들로 채워진 패널 그리고 출연진간에는 시종일관 지극히 표피적인 수준의 대화만 오간다.
더 가관인 것은, 수준 이하의 진행자와 패널들로 인해 이 프로그램이 외국인들의 눈을 통해 우리를 들여다보는 창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문화와 우리 말에 대한 우리들의 무지함만을 드러내는 장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가 뭔지도 모르는 듯한 진행자는 출연자의 발언과는 맥락상 전혀 상관없는 말들을 결론이랍시고 갖다 붙이는 것도 모자라, 한국 남자들의 잘못에 대해 패널들로 하여금 일일이 허리 굽혀 절하고 큰 소리로 사과하게 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어이없게 만든다. 이러한 장면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한국이 아닌 일본의 TV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킨 일본의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이 TV에 나와 사죄의 뜻으로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하는, 바로 그 뉴스 화면들이 연상된다는 말이다. 이런 잡종성도 한국의 TV가 글로벌화한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문제는 그 뿐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이란 타자는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젊은 여성들-"미녀들"-로 표상되며 한국인은 남성으로만 표상된다. 한국 여성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줌마들'로 자리매김된다.
그 한편에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외국 여성들은 방송 내내 끌어내려야만 할 정도로 짧은 치마와 화려한 의상을 입은 채, 마치 연예인 화보를 찍 듯 그들의 몸을 훑어내리는 카메라의 관음주의적 시선에 철저히 갇혀있다.
<미녀들의 수다> 와 대비되는 프로그램으로 한국과 아시아의 문화적 교차를 다루는 <러브 인 아시아> 가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러브 인 아시아> 역시 이주노동자들과 국제결혼가정의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법적, 제도적 차원의 구조적 문제들은 건드리지 않은 채, 출연자들의 사연을 개인화시켜 지극히 센티멘털 한 톤으로 그려내고 휴머니티만 부각시키는 문제가 있다. 러브> 러브> 미녀들의>
KBS는 그나마 KBS의 공영성을 담보해주는 KBS 1에 <러브 인 아시아> 가 있으니, 민영방송 못지않게 상업적인 KBS2에는 <미녀들의 수다> 같은 프로그램 하나쯤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다문화주의의 시각에서 문화다양성을 담아내는 진지한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의 TV에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미녀들의> 러브>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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