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가던 차량이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갑자기 우회전을 한다면 뒤따르던 차량들은 혼란에 빠져 사고를 내기 십상이다. 좌파 세력들이 참여정부의 우파적 정책을 비난할 때 자주 드는 비유다. 그러나 우파가 보기에는 반대로 깜박이는 오른쪽을 가리키면서 실제는 좌회전을 하는 게 문제다. 좌와 우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배척을 당하는 애매한 정체성은 참여정부의 운신을 제약하는 족쇄가 되곤 했다.
● 출총제 논의 원점 돌린 여당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기이한 조어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체성에 대한 비난을 반박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면 좌우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용어의 취지는 납득할 만하다. 사실 이런 실용주의적인 접근이 바로 제3의 길이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다.
다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고도의 유연성과 포용력이 전제가 돼야 하지만 참여정부는 오히려 반대로 나갔다. 개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아무런 문제해결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고, 독선과 오만으로 통합에도 실패했다. 자주를 내세우며 미국과 동맹관계에 균열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이라크 파병 및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친미적 정책으로 진보, 보수 양쪽에서 모두 공격을 받았다. 기업정책이나 부동산 정책, 노동정책 등에서도 개혁과 실용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구심점이 없는 열린우리당의 좌충우돌은 참여정부의 정책적 난맥상을 더욱 증폭시켰다. 정부가 어렵사리 마련한 출자총액제한제도 개선안이 여당의 거부로 원점으로 돌아간 사례가 본보기다. 이른바 당내 ‘개혁파’ 의원들은 이미 논의가 끝난 환상형 순환출제 규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며 출총제 논의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정부안보다 규제를 더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던 1차 당정회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결과다.
이렇게 며칠 사이에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입장이 바뀌니 정책 방향에 대한 예측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사학법등 주요 현안마다 실용적 주장과 개혁을 앞세우는 주장이 충돌하는 사례는 하나 둘이 아니다. 두 세력의 대립은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과 밀어내려는 척력처럼 작용해 여당을 정책 마비상태로 빠뜨리곤 했다.
지난 여름 ‘빅 딜’을 외치며 경제 살리기에 올인했던 김근태 당의장의 자세 변화도 당혹스럽다. 그는 대한상의를 찾아가 경제계의 제안을 ‘통 크게’ 받아들여 출총제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지금은 반대편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고 제도적 장치를 개선할 테니 멍석 위에서 마음껏 춤을 춰 달라”고 애원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정부의 부동산 공급확대 정책에 대해서도 “부동산정책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제 관료들이 있는 것 같다”고 부정적 자세를 보였다. 그의 돌변이 내년 대선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집권당 대표로서 책임 있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 정체성 방황에 무너지는 신뢰
경제정책은 선택의 문제다. 정책마다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부작용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정부나 당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책이 결정된 뒤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 따로, 정부 따로, 여당 따로 우왕좌왕한다면 국민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가.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을 하는 것보다 깜박이도 켜지 않은 채 멋대로 방향을 바꾸는 난폭 운전이 더 위험하고 부작용이 크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가. 초보 운전, 미숙 운전은 용인될 수 있지만 최소한의 룰을 지키지 않는 멋대로 운전은 용서 받지 못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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