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김계관 中서 회동… 美 "핵동결·사찰수용을" 北 "상응조치가 있어야"
한 달 전 6자회담 재개 합의를 이룬 북미 양측이 다시 중국의 중재로 28일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만나 6자회담 진전을 위한 사실상의 회담을 진행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베이징에 도착한 직후 “회담 재개(일자)는 미국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핵 실험을 해치운 상황이어서 언제든 회담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였다. 하지만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차기 회담이 유용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베이징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이번 회동은 회담 재개 일정 확정을 위한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다. 향후 회담에서 북한이 어떤 행동을 취하면 미국과 관련국들이 무엇을 대가로 줄 지의 윤곽, 즉 로드맵을 그리는 만남이었다.
10월 9일 북한 핵 실험 이후 1주일만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통과, 중국의 대북 압박, 6자회담 재개 합의,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압승 등의 곡절을 겪은 북핵 문제는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급템포를 타고 있다.
18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전쟁의 종료 선언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핵 야망을 포기한다면 상응하는 안보협력과 유인책이 제공될 것임을 밝힌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미국이 북한과 주고 받을 목록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외신들은 미국의 요구 목록을 ▦핵실험 사과 및 핵실험 무기한 중단 ▦모든 핵 시설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신고와 IAEA 조기 사찰 수용 ▦6자회담 공동성명의 일정 기한 내 이행 등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측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 해제 문제도 사실상 협상의 도마 위에 올렸다. 부시 대통령이 북미접촉 직전인 27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 문제에서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번 협상에 무게를 두는 미국측의 태도를 방증한다.
하지만 이날 접촉은 상당한 진통을 겪으며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김 부상은 6자회담이 열리면 BDA 동결 계좌를 해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동결 해제를 약속해 달라는 취지로 힐 차관보는 BDA 문제를 실무그룹에서 논의한다는 10월 31일 합의사항으로 맞받았다. 미국측으로서는 효과가 컸던 BDA 계좌동결을 핵 문제 진전 여부와 연결해 다루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BDA 문제 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핵 실험 이후 완전히 달라진 상황 속에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핵 시설 동결 및 사찰 수용 등의 조치를 취해달라는 미국측 요구에 대한 북한측의 답변이다. 북한측은 ‘동시 행동’과 ‘등가’의 원칙 등을 거론하면서 그런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미국측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핵 실험이라는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은 북한에 원상 회복에 이를 수 있는 신뢰를 요구하는 미국과 그런 조치에도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형국이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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