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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차라리 고통을 나누자고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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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차라리 고통을 나누자고 하라

입력
2006.11.2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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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없이 나대는 사람을 보고 막말로 "저 사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 한다. 내 꼴이 그랬다. 며칠 전, 내 평생 처음으로 '8,380억원'이라는 돈이 우습게 보이는 기묘한 일이 있었으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을 수밖에.

● "정치실험 했다"는 여당의 핵분열

그 뉴스는 신선했다. 내년부터 10년 동안 프랑스 카다라슈 지역에 건설하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에 우리나라도 서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였다. 그래도 한쪽에서는 소리없이 사과나무를 심고 있구나 싶었다. ITER란 라틴어로 '길'을 뜻한다. 그렇게 미래를 향한 길에 우리도 참여한다는 것이 아닌가. ITER 지분 9.09%를 확보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가 부담해야 할 액수가 8,38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까짓 거, 1조원도 안 되는 돈이 아닌가. 2년 동안 토지보상비로 이 좁은 땅덩어리에다 20조원이나 되는 돈을 겁없이 풀어놓는 정부 밑에서 살다보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올 만도 하다. 미래에 대한 약속이나 희망에 하도 오래 굶주려서 살다보니,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가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청정하고 무한한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가 30년 내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30년 후라면 나는 이미 흙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후대가 살아갈 30년 후를 내다보는 투자라니, 얼마나 신선하고 아름다운가. 세계 10대 에너지 소비국이기도 한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 우리가 국가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ITER 건설과정에서 개발되는 각종 첨단 기술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평생 언어의 족쇄를 차고 살아온 작가인 나로서는 '핵융합 에너지'라는 말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내친 김에 공부를 좀 해 볼까 싶어서 수강생 가운데 공대 4학년 녀석을 붙잡고 앉아 족집게 과외를 받기로 했다.

녀석은 대뜸, 저는 알지만 선생님이 아실 만하게 설명을 할 수가 없네요, 라고 전제를 하며 국문과 교수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핵분열 에너지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이용하는 방법으로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아서 그 원자핵이 분열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고요, 핵융합 에너지는 중수소가 고온 고압의 플라스마(plasma) 상태에서 융합하여 발생하는 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태양에서나 일어나는 이 플라스마 상태를 만들지 못하여 이용 불가능한 겁니다."

눈을 멀뚱거리던 내가 "플라스마, 그게 뭔데?" 하고 묻자 녀석은, "온도를 섭씨 1억도까지 올리면 전자가 분리되고…" 하더니 "핵융합 에너지는 합쳐져 생기는 에너지이고, 원자력 에너지는 분열하여 생기는 에너지라고만 알아두세요" 하며 가 버린다. 에라 이 녀석아, 융합이 합친다는 뜻인 건 나도 안다.

●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꼴

미래를 위해 차라리 고통을 나누자는 정부가 그립다. 허리띠를 졸라맵시다, 기름 한 방울이라도 아끼고 화장실 변기에 벽돌 한 장씩이라도 넣어 수돗물을 아낍시다 하고 설득하면서 저 멀리 정해놓은 희망의 약속을 향해 가자는 정부는 차라리 얼마나 믿음직스러울 것인가.

집권여당이 스스로를 '의미 있는 정치실험'이었다면서 핵분열을 할 모양이다. 대한민국은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라면서, '매일 강남 사람들과 밥 먹고 나온 정책으론 강남 집값 못 잡는다'면서 했던 실험이었다.

그렇게 해서 몇 년 동안에 전국 땅값을 이처럼 올려놓고, 여당의 재보선 영패 행진이라는 실험을 했다. 그래놓고 나서 이제 이름 바꾼다고, 그 나물에 그 밥인데 무엇이 달라지겠다는 것인가.

국민들에게 오늘의 고통을 이겨내자고 호소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가 온 역사는 없다. 그리고 그 호소에는 오늘의 청와대와는 다른, 드높은 도덕성이 따라야 한다.

한수산 작가ㆍ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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