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시위는 모두에게 패배 그 자체다. 시위대, 정부, 민관공동위원회, 국민 모두가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 폭력 시위는 명분ㆍ실리 모두 잃어
시위대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었다. 시위가 폭력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면서, 이들의 생각에 동조한 사람들조차 폭력적 시위를 보면서 등을 돌렸으니 말이다. 정부는 무능의 극에 달했다. 갈등을 조율할 능력도 없고, 그럴 의사도 없어 보인다.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무기력한 대외용 엄포로만 여겨지니 말이다.
새로운 조정기제로 기획된 민관공동위원회는 있으나마나 한 기구로 전락하였다. 이곳에서 제안된 권고 사항은 누구 하나 귀담아 듣지 않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힘든 현실에서 폭력시위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어디 한 곳 마음 붙일 곳이 없으니 말이다. 피로감을 넘어 아주 지치게 만든다.
시위대의 지지세력은 줄어들기만 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늘어나기만 하며, 민관공동위원회의 역할은 회의적이기만 하고, 국민의 삶은 피곤하기만 하다.
폭력이 난무하면 그 첫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더 이상 의제가 되지 못한다. 시위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더 이상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폭력에 가려 시위는 명분과 실리 모든 것을 잃은 채, 매도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위는 자기 이해를 표출하는 극히 정당한 방식이다. 그러나 시위가 정당한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법과 정해진 룰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폭력을 통해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작금의 폭력적인 시위를 겨냥하여 시위 자체를 막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시위에 대한 규제가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시위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시위에 대한 규제보다는 시위에 대해 책임을 요구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 시위, 규제보다 책임 요구해야
한국사회가 민주화 과정에서 억압적이며 전통적인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사회 질서를 위해 필수적인 권위마저 상실했다. 언뜻 보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 보이지만 대화와 타협이 폭력과 무력보다는 갈등의 조정과 조율을 훨씬 빨리 그리고 완전하게 이루어 낸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모두가 지는 싸움을 계속해야 할지 우려되는 바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정의 공정성을 중시하며 문화로 다듬어진 시위를 정착하는데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박길성ㆍ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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