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은 지금 '구인난'이다. 그것도 다름아닌 회장을. 명색이 재계의 '좌장' 자리인데, 모두들 손사래만 치고 있다. 초라해진 전경련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24일 전경련에 따르면 현 강신호(79ㆍ동아제약 회장)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연임이 끝나는 것이다. 제한이 없는 만큼 강 회장이 한번 더 할 수도 있지만, 강 회장 스스로 "더 이상은 힘들다"는 뜻을 피력해온 데다 복잡한 사내ㆍ집안문제가 걸려 있어 또 맡기는 무리라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문제는 마땅한 후임자가 없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마땅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땅한 사람은 많은데 모두들 맡지 않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사실 전경련 회장은 나이로 보나, 기업규모로 보나, 재계 평판으로 보나 이건희(64) 삼성회장이 맡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2005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삼성측의 뜻은 완강하다.
표면적 이유는 회사경영 집중과 건강 문제지만, 삼성이 안고 있는 복잡한 영업외적 현안이나 이 회장의 스타일상 전경련 회장처럼 '전면에 노출되는 자리'를 맡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음으론 정몽구(68)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이 있지만, 진행중인 재판 때문에 불가능하다. 구본무(61) LG회장은 1999년 빅딜 이후, 전경련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내고 있다.
'빅 3(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총수'를 빼고,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사로는 조석래(71) 효성회장, 박삼구(61) 금호아시아나회장, 김승연(54) 한화회장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한결같이 "회사경영 현안이 많아 전경련을 맡을 여력이 없다"고 한다. 이들마저 거부한다면 차기 전경련 회장은 ▦강 회장의 3연임 ▦강 회장이나 전임 김각중(경방) 회장처럼 비(非)재벌급 중견그룹 오너 ▦과거 유창순씨처럼 전문경영인 또는 전직관료 출신의 비오너 회장 체제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한 재계인사는 "모두들 회장을 안 맡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오늘의 전경련 위상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사실 전경련은 시대흐름을 읽지 못하는 수구이미지, 자기반성 없이 정부와 노조만 탓하는 행태 등으로 국민과 정부로부터 외면 받고, 그러다 보니 재계의 대표성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스로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2년마다 수장을 찾지 못해 동분서주하는 초라한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평가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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