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4일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풍류극장에 올려지는 <7일간의 마당놀이 ‘광대’>의 주인공 강준섭(73)씨는 유랑 광대다. “열 세살에 집을 나온 뒤부터 지금 이 나이가 되기까지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어요.” 그는 전남 진도의 무당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굿판이 싫었다. 그래서 무명 세 필을 훔쳐 집을 나왔고, 공연을 미끼로 싸구려 물건을 파는 유랑 단체들을 따라다니며 소리와 연기를 배웠다. 공연 소품이나 장치를 손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약을 팔아 이문을 남기는 ‘딸딸이’ 유랑 극단에서 공연을 했고, 세월에 따라 그의 무대는 서커스나 여성농악단 등으로 바뀌기도 했다.
창극 <심청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은 물론이고 <안개 낀 목포강> <어머니 울지 마세요> 같은 현대극과 코미디까지 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특히 피리나 대금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상창(上唱)에 얼굴 근육이 제각각 움직이는 독특한 ‘심 봉사’ 연기는 단연 최고로 꼽힌다. 영화 <왕의 남자> 에서 감우성이 보여준 소경 연기도 강 씨가 <뺑파막> 에서 한 것을 따라한 것이다. 뺑파막> 왕의> 어머니> 안개> 장화홍련전> 춘향전> 심청전>
그는 1985년 무형문화재 진도 다시래기 보유자로 지정 받았지만 요즘도 시골장이나 칠순 잔치, 경로 잔치, ‘땡 처리’ 장사하는 곳 등 다니지 않는 곳이 없다. 얼마 전에도 전남 곡성군에서 열린 칠순 잔치에 다녀왔다. “평생 목구멍을 팔아 먹고 살았어요. 기술이라고는 이거 밖에 없는데 아직까지 오라는 데가 있으니 가야지요.”
부인이자 동료인 김애선(63)씨와 보자기 하나가 늘 그를 따라다닌다. 보자기를 풀어 보니 낡아서 구멍이 숭숭 뚫린 갓 하나와 나무 지팡이, 담뱃대가 들어있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판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나하고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들이지요. 얼마나 오래 됐는지도 모르겠어….”
광대는 소리뿐 아니라 춤과 재담, 연기까지 해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소리는 소리대로, 춤은 춤대로 분리 되면서 광대 연기는 제대로 전승되지 못했다. 강 씨 같은 유랑 광대가 광대 연기의 유일한 전승 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상 받은 사람들을 명창이라고 하더라고요. 요새는 광대가 없어요. 그런 말도 없고. 옛날에는 소리만 잘해서는 끼지도 못했어요.”
칠순이 넘은 나이에 유랑 생활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강 씨는 “숨이 가쁘고 몸도 무거워 고단하다”면서도 “집에 2, 3일만 들어앉아 있으면 심심해요. 또 누가 오라고 안하는가 싶어 기다리지”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돌아다닐지는 나이가 알겠지, 나는 몰라요.”
이번 무대에서 그는 <심청전 중 가장 해학적인 대목인 <뺑파막> 을 비롯해 <놀보막> , <경문유희> 등을 통해 토종 광대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12월 4~7일, 11~13일 오후 4시, 7시30분. (02)760-4696 경문유희> 놀보막> 심청전>
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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