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1일 창당 9돌을 맞았다. 1997년 15대 대선을 한달 남짓 앞둔 이날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출범한 게 한나라당이다.
요즘 한나라당은 유력 대선주자들의 본격 레이스와 함께 의원들의 줄서기 경쟁과 상대 진영에 대한 견제, 그리고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의원들의 눈치보기 등으로 어수선하다. 2002년 대선까지 이회창 전 총재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대오를 유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유력 주자에 충성 경쟁
대체로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곁으로 의원들이 모이고 있고, 상대적으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힘겨운 상태다. 박 전 대표 쪽에는 김무성 유승민 유정복 의원 등이 있고, 이 전 시장 쪽에는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원조 멤버인 이재오 정두언 의원 등이 있다.
이들이 주로 의원들을 데려오거나 선별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중 한 의원은 연말까지 의원들과의 식사 약속이 가득 차 있다. 다른 의원은 유력 주자의 해외 순방 시 동행할 수 있도록 추천해달라는 부탁에 시달리고 있다. 한 보좌역은 “유력 주자와 만나게 해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하루 평균 200여통 받는다.
캠프마다 의원들이 늘어나면서 내부 충성 경쟁도 벌어진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사무실에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 사진을 걸어 놓고 있다. 수도권의 다른 의원은 유력 주자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기 위해 같은 나라 방문 일정을 만들기도 했다. 대선주자의 지방 순회에 따라가서 “망해가는 나라를 구할 유일한 적임자”(영남 K의원) “대통령으로 만들어 무등을 태워 다시 오겠다”(영남 L의원)는 ‘오버성’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캠프간 신경전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측의 네거티브 공방도 적지 않다. 상대 주자를 깎아 내리는 비방과 음해성 마타도어가 나돌고 있다.
대구ㆍ경북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언론과 접할 때면 “특정 주자가 되면 정치 보복이 우려된다”고 말하고, 한 비례대표 의원은 “서민 고통을 온몸으로 느낀 사람이 지도자감”이라는 식으로 경쟁 주자를 깎아 내린다. 상대 주자의 숨겨진 파일이 여권에 가득하다는 얘기도 떠돈다.
상대방 핵심 참모가 중립으로 돌아섰다는 소문도 있다. 한 의원을 놓고는 손 전 지사쪽에서 박 전 대표쪽으로 갔다가 지금은 이 전 시장 쪽으로 말을 갈아탔다는 말도 들린다.
실제로 유력 주자의 지지율 변화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의원도 있다. 어떤 의원은 ‘전향 신고’를 하면서 자신이 출마한 당내 선거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다음달 치러지는 당 중앙위의장과 여성위원장 선거가 양측의 대리전이 돼 불꽃이 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수도권의 K의원은 대리전 반대를 외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중간지대에서 눈치보기
어느 쪽이든 줄을 서야 하는 부담을 느끼면서도 막상 누구를 지지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관망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수도권 K의원은 “늦어도 연말까지는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자간 세가 비등할 때 결정해야지,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는 이미 때가 늦는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은 당분간 특정 주자에 줄 서지 않겠다는 모임을 만들었고, 일정 세를 확보하고 있는 의원은 주자들이 먼저 손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낮에는 중립을 말하지만, 밤에는 이 캠프 저 캠프를 기웃거리는 ‘지하철 계보’도 많다는 전언이다. 한 캠프의 핵심 의원은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의원들이 밤에는 별도로 만나 정보를 주곤 한다”고 귀띔했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역시 ‘양다리 형’이다. 영남 C의원은 한 주자의 지역구 방문에 앞서 다른 주자 쪽에 전화를 걸어 “(그 주자를) 한껏 칭송할 테니 봐달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영남 L의원은 “한 주자의 해외 출장에 동행하게 됐다”고 다른 쪽에 신고를 했다.
또 기회 있을 때마다 양쪽 캠프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전화형’, 양 캠프를 오가며 측근들과의 대면접촉을 늘리는 ‘방문형’ 도 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양쪽의 신경전이 하도 날카로워 아예 손 전 지사를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내심은 다른 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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