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단기적 집값안정을 위해 결국 후분양제까지 희생시킬 태세다. ‘11ㆍ15 부동산 안정대책’을 통해 신도시 주택물량 조기ㆍ확대 공급 방침을 밝힌 데 이어, 21일엔 주택시장 정상화와 중장기 집값 안정의 강력한 카드로 추진했던 후분양제 일정까지 재검토키로 하는 등 정책기조는 공급확대 일변도로 치우치는 양상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신도시 조기분양과 후분양제 시행은 서로 상충되는 정책임에도 불구, 11ㆍ15대책에서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가 결국 일주일도 못돼 후분양제 쪽에 손질을 가하기로 하는 등 주택가격 안정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초 정부의 후분양제 로드맵은 △내년부터 40%공정을 완료한 주택(공공)에 대해서만 분양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2009년부터는 60% △2011년부터는 80%로 분양가능 공정률을 높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후분양제는 선분양을 전제로 한 주택조기공급 방침과 태생적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11ㆍ15 대책에 따르면 신도시 지역 아파트 첫 분양은 빨라야 2008년 3월이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후분양제가 시행돼 공정률이 40%를 넘어야 분양이 가능해지는 시점이다. 분양 예정 시기가 2009년 이후인 파주 3단계, 평택, 인천 검단 신도시는 아예 60%이상 지어야 분양할 수 있다. 11ㆍ15대책상의 일정보다 1년 이상 분양이 늦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민간아파트는 후분양제 강제적용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인센티브 규정(민간아파트도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택지공급 우선권부여)을 고려하면, 민간아파트들도 후분양제를 외면하긴 힘들다. 이렇게 되면 결국 공급확대 방안의 중요 축인 ‘분양시기 단축’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래서 정부는 공급확대를 살리기 위해 후분양제쪽을 희생시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후분양제 로드맵을 철폐하거나 무기 연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후분양제는 그 자체로 당위성과, 참여정부의 대표적 분양제도혁신정책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후분양제는 적절한 분양가 산정을 통한 건설업체 폭리 방지와 투기세력의 개입 여지 원천 봉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에서는 아예 공급확대 정책 대신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도입과 함께 후분양제의 전면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로드맵은 17일 택지개발 업무처리지침 개정으로 최종 확정됐기 때문에 며칠만에 뒤집기도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도 전면 손질 보다는 민간아파트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부분만 일부 손댈 것으로 보인다. 인센티브를 철폐하면 민간 건설업체들로서는 후분양제를 도입할 이유가 없어지고, 이렇게 되면 민간 아파트들은 현행 선분양제에 따라 정부 생각대로 조기공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로선 공급확대의 걸림돌로 떠오른 후분양제가 달가울 리 없다”며 “인센티브 철폐를 통해 여론의 향방을 가늠해본 뒤 본격적인 철폐 여부가 논의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역시 “눈앞의 집값안정을 위해 제도개혁을 포기한다”는 비난을 피해가기는 힘들다. 특히 서울시가 추진하는 ‘급진적’ 후분양제는 제동을 걸 수 없어, ‘중앙정부의 신도시는 선분양, 서울시의 뉴타운은 후분양’이라는 이상한 모양새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80%의 공정완료 후에야 분양이 가능하도록 한 서울시의 후분양제는 공급을 축소시킬 수 있어 부적절하다”는 강팔문 건교부 주거복지본부장의 21일 비판에 대해 서울시측은 “공급과는 무관한 조치”라고 맞받아치면서 후분양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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