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방송된 MBC <환상의 커플> 의 한 장면. 애절한 음악을 배경으로 공 실장(김광규)의 품에 안긴 덕구 엄마(이미영)가 울부짖는다. “우리 소가 불치병에 걸렸대. 불쌍해서 어떡해.” 지나가던 소도 웃을, 홍미란ㆍ홍정은 자매 작가 특유의 패러디 쇼가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포복절도의 뒤끝에 씁쓸함이 배어난다. 환상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찬 바람과 함께 멜로 드라마의 계절이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같이 불치병을 대동했다. 13일 첫 방송한 KBS2 <눈의 여왕> 의 여주인공 보라(성유리)는 근무력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15일부터 전파를 탄 MBC <90일, 사랑할 시간>에서 현지석(강지환)은 췌장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첫사랑 고미연(김하늘)과 남은 삶을 누리기 위해 가족까지 버릴 작정이다. 20일 선보인 SBS <눈꽃> 역시 췌장암에 걸린 이혼녀 강애(김희애)가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딸 다미(고아라)와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눈꽃> 눈의>
불치병이 출생의 비밀 등과 함께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된지는 오래다. “또야?”라는 반응에 제작진이 “꼭 필요한 설정”이라며 장황한 설명을 다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 됐다.
사람(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에 삶의 간난신고가 빠질 수 없고 불치병도 얼마든지 소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애절하고 절박한 사랑에는 왜 꼭 불치병이 끼어야 할까. 작가의 상상력 빈곤, 연출자의 안이한 태도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국내 드라마에서 불치병은 그저 설정으로만 소비될 뿐이다. ‘척수소뇌변성증’을 앓는 소녀의 투병을 감동적으로 그린 일본 후지TV <1리터의 눈물>같은 작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제작진이 못 들어본 희귀 질병을 찾아내는데 들이는 노력의 10분의 1이라도, 그 병을 앓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주문일까.
막 시작한 세 드라마의 완성도까지 앞질러 폄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불치병 없이도 애절한 사랑, 환자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드라마를 보여줄순 없을까.
김회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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