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으나마 다른 이를 돕는 행복이 봉사활동을 그만둘 수 없게 합니다.”
17년째 이웃을 돕는 기쁨에 중독돼 살아온 사람이 있다. 서울경찰청 202경비단 오학래(43) 경사가 그 주인공. 근육질 체구와 날카로운 눈매는 ‘날개 없는 천사’의 모습과 거리가 있지만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을 하루 24시간 생각하는 사람이다.
“좀 짜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드시고 모자라면 얘기하세요.”
21일 오 경사는 점심시간 짬을 내 박기종(43ㆍ지체장애 1급ㆍ서울 강서구 등촌동) 최영애(44ㆍ여ㆍ지제장애 1급)씨 부부에게 집에서 만든 김장김치 30포기를 갖다 줬다.
그는 두 딸을 데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박씨의 얘기를 1998년 신문에서 본 뒤 월 10만원씩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다. 박씨는 “며칠 전 수학여행을 떠나는 딸에게 찾아가 용돈까지 줬다”며 “오 경사 같은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을 것”이라고 고마워 했다.
오 경사의 봉사활동은 강력계 형사로 경찰생활을 시작한 89년 늦가을 길에서 잠든 노점상을 집까지 업어다 준 것이 시작이 됐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달동네 단칸방에 노점상을 내려 놓고 나오는데 텅 빈 연탄 광과 바닥이 보이는 쌀독에서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술에 취해 잠든 노점상의 주름진 얼굴에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이후 오 경사는 많지 않은 순경 월급을 쪼개 다달이 노점상에게 부쳤다. 학창시절 신문배달부터 방범 아르바이트까지 안 해 본 고생이 없는 그에게 배고픔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10여년 세월이 흘렀고 노점상의 아들은 오 경사의 도움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한 번 시작된 이웃사랑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동안 오 경사의 도움을 받은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독거노인은 30명이 넘는다. 지금도 박씨 부부를 비롯해 4가족에게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24시간 근무 뒤 24시간을 쉬는 오 경사에게 비번인 24시간은 봉사활동을 하는 시간이다. 오 경사의 꿈은 정년퇴임 후 받는 퇴직금으로 복지사업을 하는 것. 그는 현재 사회복지사 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매달 월급의 30%가 넘는 100만원을 자원봉사에 쓰고 휴일마다 소외된 이웃을 찾아 다니느라 오 경사는 아직 그 흔한 자가용도 없다. 살고 있는 집도 보증금 3,000만원짜리 전셋집이다.
가족들이 싫어하지 않냐고 묻자 “과외 한 번 시킨 적 없는데 작은 아들(12)이 영어 말하기대회에서 1등을 했다”며 “내 뜻을 잘 이해해 줘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각종 복지시설의 연락처가 가득 적혀 있는 수첩을 보여주며 “이게 아들 둘에게 남겨줄 유일한 재산”이라고 활짝 웃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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