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긴 전쟁은 딱 집어 말하기 어렵다. 흔히 꼽는 유럽 십자군전쟁은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첫 원정대를 소집한 이후 프랑스왕 루이 9세의 8차 원정이 끝난 1291년까지 2세기나 이어졌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간 프랑스, 영국이 벌인 백년전쟁도 장기전 기록으로는 만만치 않다.
그러나 당시 전투는 잦은 휴지기를 두고 단속적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이들 전쟁의 명칭은 시대적 구분에 가깝다. 이런 식이면 숱한 제후ㆍ군웅의 발호로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던 중국 춘추전국시대 900여년을 가장 긴 전쟁기로 볼 수도 있다.
▦ 그러나 역사상 가장 긴 휴전을 드는 데는 누구도 이의가 없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한국전 휴전이다. 백년전쟁에서도 제일 길었던 정전기간은 고작 20년 남짓이었다. 현대에 들어 가장 지루한 전쟁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중동에서의 최장 휴전기간도 대략 그 정도다.
우리 역사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휴전 사례는 둘 있는데 몽골의 고려 침입과 조선 임진왜란 때다. 몽골의 3차 침입과 4차 침입 사이 17년이 가장 길었고, 임진왜란 때 명과 왜 사이에 우여곡절을 거쳐 이뤄진 화의는 고작 1년 만에 정유년 왜의 재침으로 깨지고 만다.
▦ 미국이 한국전 종료선언 의사를 밝힘에 따라 세계 최장기 휴전상황이 과연 언제 막을 내릴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쟁이 공식 종료된다면 그에 수반될 변화는 한둘이 아니다.
당장 휴전체제 준수를 위한 행정적 필요로 설정됐던 군사분계선(MDL), 남북 각 2㎞ 구간에 걸친 비무장지대(DMZ),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명칭과 기능을 어떻게 바꿀지부터 유엔사의 지위, 주한미군,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관련 사안이 산적해 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명시한 헌법의 영토 규정도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 하지만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다. 전시도, 평화시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북한이 국가인지 반국가단체인지, 남북한 사람은 한 국민인지 별개 국민인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들 인식의 혼란을 겪어 왔다.
전쟁 종료와 함께 평화협정으로 이행하면 이런 사안들을 정리하는 과정 역시 불가피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을 보는 시각이나 교류, 통일운동은 낭만적 요소가 대폭 축소되고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과정이 길고도 지난할 것이라는 점을 전제한 얘기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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