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보다 나은 리메이크 없다.’ 최근 쏟아진 아시아 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통해 국내 관객들이 터득한 학습효과다.
플롯의 어쩔 수 없는 반복은 원작의 참신함을 고루함으로 바꾸고, 서양 관객의 입맛을 위해 재가공된 아시아적 향취는 밋밋한 보편성으로 변질되기 십상이었다. ‘귤이 태평양을 건너면 탱자가 되는’ 비극은 <시월애> 를 리메이크한 <레이크 하우스> 를 비롯해 <쉘 위 댄스> <링> <그루지> 등에서 숙명처럼 반복됐다. 그루지> 링> 쉘> 레이크> 시월애>
그러나 거장이 손을 대면 리메이크도 ‘뉴 메이크’가 되는 걸까. 미국의 대가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디파티드> (원제 The Departed)는 류더화(劉德華) 양차오웨이(梁朝偉)가 주연한 홍콩영화 <무간도> 의 단순한 동어 반복을 넘어서는 완성도와 대중성으로 성공한 리메이크의 전범을 보여준다. 무간도> 디파티드>
<디파티드> 에서 <무간도> 의 그림자를 떼어낼 수는 없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디파티드> 는 갱단에 잠입한 경찰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경찰이 된 갱단 첩자 설리번(맷 데이먼)의 암투, 암흑가 보스 코스텔로(잭 니콜슨)와 경찰 간부 퀸넘(마틴 쉰)의 목숨 건 대결을 뼈대로 삼고 있다. 퀸넘이 갱단 조직원들에 의해 옥상에서 내던져지거나 피살된 코스티건의 다리 때문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는 모습 등 <무간도> 의 인상적인 장면은 복제에 가까울 정도로 재연된다. 무간도> 디파티드> 무간도> 디파티드>
하지만 <디파티드> 는 몇 개의 차이로 <무간도> 와의 구별 짓기를 시도하고, 원작과 다른 창조적인 성과를 만든다. 코스텔로의 비중이 강화되고, 코스티건의 경찰 입문 사연을 좀 더 상세히 거론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디파티드> 는 코스텔로가 입지전적인 대부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농축된 대사와 장면, 그리고 범죄로 점철된 코스티건의 가족사를 일별하면서 <무간도> 의 기시감을 떨쳐낸다. 무간도> 디파티드> 무간도> 디파티드>
<무간도> 의 정치ㆍ사회적 의미를 미국식으로 바꿔놓은 것도 주목할 점이다. <무간도> 가 1997년 이후 중국과 기이한 동거에 들어간 홍콩의 정체성을 고민했다면, <디파티드> 는 미국의 복잡다단한 이민의 역사와 그 어둠을 헤집는다. 파편화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냉소와 경멸은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다. 디파티드> 무간도> 무간도>
잭 니콜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명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연기 앙상블은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특히 피부를 파고든 주름 마저 연기를 하는 것 아닌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잭 니콜슨의 명연은 가히 명불허전이다.
제목은 ‘죽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서로 속고 속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등장인물의 고통스런 내면이 녹아있다. 원작과 다른 충격적인 결말도 제목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만든다. 23일 개봉, 15세.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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