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범생보다는 사고뭉치 제자들과의 사연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부산ㆍ경남 지역에서 38년간 교편을 잡은 경남 양산시 효암고 이내길(60ㆍ사진) 교장이 1970년대 중반부터 학교 안팎에서 ‘사고를 친’ 제자들의 반성문 800여통을 소재로 자신의 교사관과 인생관을 담은 저서 <쓴 맛이 사는 맛> 을 냈다. 쓴>
380여쪽인 이 책은 이 교장이 교사시절 모은 제자들의 반성문 가운데 자신의 가슴을 아리게 한 글들을 발췌, 12년 전부터 집필해온 것으로 학교 현장에서 문제아들의 일탈과 이들을 지도하는 교사의 애환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소년원’과 ‘퇴학생’ ‘일레븐 클럽’ 등 소제목만 봐도 사고 친 제자들의 ‘죄목’이 연상된다. ‘교원노조’와 ‘갈등’ ‘아부지 전상서’등에는 초ㆍ중ㆍ고 교사와 대학강사도 지낸 그의 교단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학내 폭력서클 간 패싸움 사건이 발생한 뒤 열린 교무회의에서 학생부 교사가 검사역을 맡아 ‘엄벌’을 주장했을 때, 담임인 자신은 변호사로 나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선처를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녹아 있다. 책에는 패싸움에 가담한 한 제자가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는데 복도를 닦으며 마음의 때를 말끔히 닦아야겠다”는 수준 있는 반성문 일부가 인용되기도 했다.
고교시절 무단가출 때문에 자신도 퇴학 경험이 있다는 이 교장은 “‘문제아들’의 문제는 사회와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교육적 목적으로 책을 냈다”며 “반성문의 주인공들이 지금은 더 열심히 살고 있으며, 성인이 돼 나를 찾는 상당수도 이들”이라고 말했다.
공부는 물론 ‘놀기도 잘 하는’ 제자들의 단상도 소개돼 있다. 벤처기업 새롬기술㈜의 공동창업자 최환익(35)씨와 부산지법 김종기(47) 부장판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교장은 “환익이는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어울리고, 말술을 먹어 엄밀히 따지면 문제아였지만 학생회장의 징크스를 깨고 서울대를 멋들어지게 들어갔다”고 회고했다. 예비고사에서 부산 수석을 차지한 김 부장판사와 관련해서는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집이 어려워 과외수업 못 받았지요. 축구 잘 하지요. 성격도 좋지요?’등의 정답에 가까운 질문을 던져 당시 ‘예, 그렇죠’라고 대답은 했다”면서 ‘실제 학교생활은 그렇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그에 대한 단상을 남겼다.
정년이 2년 남은 이 교장은 24일 효암고 강당에서 반성문의 주인공을 비롯한 제자 300여명을 초청,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양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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