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에 주택담보대출 중단을 주문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한 금융당국이 이번엔 외화대출 실태 조사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외화대출이 부동산 구입자금 등에 편법적으로 흘러 들어 갔는지 여부 등을 집중 조사할 예정이다. 하지만 외화대출 자금의 편법유용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전무해 이번에도 엄포용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20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양 기관은 지난 8월 자제요청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 외화대출이 급증세가 계속됨에 따라 공동 검사권을 발동하기로 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최근 시중은행의 외화대출이 엔화대출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늘고 있어 실태를 살펴보고 위험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 지 점검할 예정"이라며 "최근 엔화대출이 크게 늘어난 은행을 중심으로 조사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 기업 신한 우리 하나 등 5개 시중은행에 따르면 17일을 기준으로 5개 시중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1조1,442억엔(원화기준 약 91조772억원)에 달한다. 1월말 현재 7,529억엔에 머물던 5대 은행의 엔화대출은 엔저 지속 속에 11개월 여 만에 무려 52%가량 급등했다.
특히 부동산가격이 다시 급등세를 보이기 시작한 9월말 1조1,315억엔과 비교하면 한달여 만에 127억엔(약 1,006억원)이나 늘어나 최근의 엔화대출 급등세가 부동산 급등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시중은행 강남 영업점에서는 "모 병원장은 병원 건물 구입명목으로 엔화대출을 받아 환전해 강남 요지 아파트에 투자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소문이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엔화대출은 금리가 2~3%대로 원화 대출보다 훨씬 낮지만, 환변동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것으로 은행이 개인용도 대출은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의 시설 및 운전자금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병원 의사 등 자영업자가 기업시설이나 운전자금 용도로 엔화 대출을 받아 부동산 매입용으로 유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만약 엔화대출자가 대출금을 아파트 매입 등에 사용했다면, 최근 아파트가격 급등에 따른 투자차익은 물론 한ㆍ일간 금리 차익과 최근 원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 등 '일석삼조'의 고수익을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 조사 역시 헛발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이나 외국환 관련 법률과 규정 어디에도 대출자금 용도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만약 자영업자가 당초 밝힌 대출목적과 다르게 자금을 사용했다면, 여신심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해당 금융기관에 물을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의 자제요청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ㆍ엔 환율은 100엔당 792.91원으로 지난 주말보다 0.41원 소폭 올랐다. 원ㆍ엔 환율은 달러에 대한 엔화의 강세가 지속되면서 이틀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원ㆍ달러 환율은 엔화 강세의 영향으로 지난주말보다 3.6원 떨어진 935.3원으로 마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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