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경제의 침체가 길어지면서 가계 부실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올해 개인파산 신청자가 사상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인데다 주택담보대출의 급증으로 가계의 금융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기침체와 일자리 부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살림에 주택가격까지 불안정해지거나 대출금리가 인상될 경우 개인파산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19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올 9월까지 개인파산신청자 수는 8만5,45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 3,708명의 3.6배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전체 3만 8,773명을 훌쩍 넘은 수치다. 특히 4월부터 월별 개인파산신청자 수가 1만~1만1,000명 수준에 달해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전체 개인파산신청자수가 10만 명을 넘어 11~12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개인파산 신청이 급증한 것은 일단 신청 요건이 완화됐고 채무변제책임을 면제해주는 법원의 선고도 늘면서 파산선고가 오히려 재기의 기회로 활용된 측면도 크다. 하지만, 서민들이 “도저히 빚 갚을 능력이 없다”며 파산신청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경기부진으로 인한 소득과 일자리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소득 양극화로 인해 하위 계층의 여건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전국 가구의 소득 수준을 10개 그룹으로 나누면, 하위 10%에 해당하는 층의 3분기 소득증가율은 –3.2%, 바로 윗 계층은 –0.9%로 하위 20% 가구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전국 가구의 평균 적자가구 비율 역시 28.5%로 전분기(27.8%)보다 0.7%포인트 증가했다.
우리 국민 전체의 가계 부실도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상반기 가계의 금융부채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지난해 말 대비 8.6% 증가했지만, 이 기간 국민 총소득(GNI)은 5.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가계의 개인 가처분 금융부채비율(가용 소득에서 금융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1.36배에서 올 6월엔 1.41배로 높아졌다. 우리나라 개인의 금융 빚이 1년간 벌어들인 소득의 1.41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빚은 늘지만 소득 증가가 따라잡지 못해 빚 갚을 능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가계 부실의 가장 큰 이유가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출자금 급증이란 점을 감안하면 향후 상황은 더욱 어둡다. 올 1~9월 26조2,000억원에 달하는 가계대출증가액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63.7%(16조7000억원)에 이른다. 금융권 관계자는 “집값이 상승하면 이자비용을 충분히 물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에 쪼들리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며 “집값 폭락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집값이 정체되더라도 대출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커 이자부담으로 인해 가계 부실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60%~80%에서 50%로 축소되면서 서민들이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여력도 줄어든 상황이다. 때문에 당장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고금리의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 밖에 없어 한계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연구원은 “가계부실을 방치할 경우 금융위기는 물론 한국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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