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당정협의를 통해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완화 및 순환출자 규제 미실시를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이 두 제도의 도입 여부를 놓고 첨예한 시각 차이를 보였던 재계와 시민단체는 모두 즉각 반발했다.
이런 와중에서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 두 제도의 본질을 조금 더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순환출자 규제는 투자 저해" 사실무근
먼저 순환출자 규제 문제부터 보자. 순환출자 규제 제도는 한 마디로 돈 한 푼 넣지 않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극단적인 가공의결권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기회사 주식은 마치 주식이 발행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당연히 현행법 역시 자사주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제 공동의 지배관계하에 있는 두 기업 갑과 을이 각각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던 상황에서 자사주를 서로 맞바꾼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때는 소유주가 변했기 때문에 갑은 을에 대해, 을은 갑에 대해 맞교환한 주식에 해당한 의결권을 보유하게 된다.
결국 두 기업을 동시에 지배하고 있는 공동지배자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계열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소위 공동의 지배관계에 놓인 두 기업 간의 상호주 보유의 문제인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이를 규제하고 있다.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란 위의 규제를 공동의 지배관계하에 있는 3개 이상의 계열회사로 확대한 것뿐이다. 이 규제가 추가로 필요한 이유는 이런 추가 규제가 없다면 위의 예에서 공동지배자는 또 다른 계열회사 병을 동원하여 갑, 을, 병 간에 자사주를 순차적으로 이전하면 자사주나 상호주에 대한 의결권 규제를 성공적으로 회피하면서 아무런 비용 없이 가공의결권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상형 순환출자는 계열회사 소수주주의 의결권을 부당하게 침해하기 때문에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행동이다. 이것이 순환출자를 규제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혹자는 순환출자를 규제하면 투자가 저해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왜냐 하면 위의 예에서 잘 나타나듯이 환상형 순환출자에는 단 한 푼의 실물자원도 소요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투자를 촉진하지도 않고, 그것을 규제한다고 투자가 저해되지도 않는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순환출자 규제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공동의 지배관계에 놓인 계열회사의 출자 규모를 일정수준 이하로 제한함으로써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기업들의 조직형태와 상관없이 출자 그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는 강력한 규제수단이다.
● 출총제는 대상 축소, 실효성 확보해야
그러나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순환출자 규제와는 달리 효율적인 투자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출자총액제한 제도 때문에 투자를 할 수 없다는 재계의 주장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성립할 수도 있는 주장이다. 다만 여러 실증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출자총액제한이 실물투자를 실제로 제약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공정거래법의 바람직한 개정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선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는 실물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직 가공의결권을 만들어내는 폐해만을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입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음으로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현재 너무나 많은 예외로 누더기가 되어 있으므로 적용 대상을 일부 대규모 기업으로 축소하되 예외를 대폭 정리하여 실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국회의 법안 심의과정에서는 이런 방향으로 개정안이 정리되기를 기대한다.
전성인ㆍ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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