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 지음ㆍ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발행ㆍ160쪽ㆍ8,800원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한밤의 사고> 는 ‘시간’과 ‘기억’이라는 두 추상명사를 유념해 가며 읽어야 할 만만찮은 작품이다. 작가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제를 의도적으로 재단하고 뒤섞는다. 또한, 스스로의 기억을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주인공의 기억은 현재와 과거, 또 더 먼 과거의 시점을 종횡무진한다. 헝클어진 시간, 무질서한 기억 탓에 소설은 희뿌연 꿈속을 맴도는 듯 몽환적이다. 한밤의>
<한밤의 사고> 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주인공 ‘나’의 30년 전 교통사고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한다. 그날 밤 사고 직후 가해자인 여자 운전자와 함께 병원으로 실려간 주인공은 그녀에게 왠지 모를 끌림을 느끼지만, 마취제에 취해 정신을 잃고 만다. 마취에서 깨어난 그는 과도하게 많이 받은 사고 위로금을 돌려주기 위해 그녀를 찾아 나선다. 한밤의>
그녀, 자클린 보제르장의 행적을 따라 파리 시내를 배회하는 사이, 그 알 수 없는 끌림은 어디선가 만났던 것 같은 묘한 데자뷔, 기시감(旣視感) 때문이었던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나’를 알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그 사고는 그녀가 ‘나’의 헝클어진 기억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일부러 계획한 일일지도 모른다.
“삶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운명 혹은 우연이 주선해 준 만남”(37쪽)처럼, 그녀만이 작은 파편으로 조각난 ‘나’의 기억을 복원시켜 줄 구세주일 터. 결국 돈을 돌려주기 위한 좇음은 어느 새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생의 온전한 부분”(121쪽)의 실마리를 찾는 추적으로 탈바꿈한다. 그 과정에서, 복잡하게 뒤엉켰던 ‘나’의 과거는 “어둠의 장막 한 자락이 찢겨”(147쪽) 나가듯 서서히 순차적 질서를 회복한다.
소설은 기억의 상실, ‘망각’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기억의 어긋남, ‘분절’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나’가 과거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 놓지 않고 여기저기 방치해 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의 기억은 머리 속에서 부유하는 작은 모자이크 조각의 불규칙한 모음과 같다. 작가는 이같은 ‘나’의 모습으로, 소통의 부재-어쩌면 소통을 위한 노력의 부재-상태에서 조각난 기억의 바다를 의미 없이 떠도는 현대인들을 대유(代喩)한다.
‘우울한 파리의 풍경’을 가장 세밀하게 그려낸다고 평가받는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 그는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1978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어두운>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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