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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어선 제 집 나들듯… 이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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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어선 제 집 나들듯… 이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입력
2006.11.1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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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무것도 아니여, 밤이면 저것들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쭉 늘어서는데 섬이 거의 포위되다시피 한다니까. 임진왜란 때 왜군들의 모습이 이러지 않았을까 싶어.”

14일 오전 서해 최북단 백령도 서북쪽 언덕의 정상에 자리잡은 심청각(沈淸閣). 자욱하게 섬을 감싼 해무(海霧)가 드센 바람에 쓸려나가자 수십 척의 시커먼 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어선들이다.

일렬로 늘어서서 조업중인 선단 뒤로 북한의 장산곶이 손 뻗으면 닿을 듯 눈앞에 나타났다. 직선 거리는 11km다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의 서쪽 바다는 중국 선원들에게 팔려가 재물로 바쳐졌다는 효녀 심청의 전설이 전하는 곳으로 인당수에 해당하는 셈이다. 백령도는 해무와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장산곶을 깨끗하게 볼 수 있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라고 한다.

백령도에서 태어난 어부 박덕순(51)씨는 “남북한이 대치,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사이 중국 어선들은 제 마당 드나들 듯 고기를 잡아 가고 있다”며 “이게 바로 어부지리(漁夫之利)가 아니고 무엇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씨는 “중국 어선들이 고기를 잡아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바다 안개가 중국 어선들을 가리는 날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실제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는 2002년 6월 서해교전 이후 중국 어선들의 남획으로 어장이 망가졌고 생태계마저 파괴됐다.

중국 어선들의 군사분계선상 조업은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조업에 나서기도 한다. 백령도 기상대에 따르면 이날 해상에는 하얀 포말이 일 정도로 높은 파도(2.5~4m)가 쳐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상황이었다. 백령도 주민들은 해상에 파도가 하얗게 일면 일절 배를 띄우지 않는다.

선단을 이뤄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중국 어선들이 끄는 저인망식 그물 때문에 어종의 씨가 마르고 있다.

두문진 어촌계장 최종남(59)씨는 “백령도에서 꽃게 구경한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며 “중국 어선들이 바다 밑바닥까지 긁어대는 바람에 고기의 씨가 마르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주민은 “백령도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꽃게뿐 만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백령도에서는 지금 제철인 홍어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중국 어선들이 긴 띠를 이뤄 조업에 나선 뒤로 백령도에는 조기 우럭 놀래미 등의 어획량이 급감했다. 꽃게의 경우 2002년 2,043톤에 달했던 어획량이 올해에는 10월까지 147톤으로 줄어들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중국 선단이 백령도과 장산곶 사이에서 잡아가는 어획량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주민은 없다. 관광업을 하고 있는 정모씨는 “지난해 8월 백령도가 죽은 조기와 산 조기로 둘러 쌓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어민들이 평소 구경하기도 싶지 않던 조기와 꽃게를 대량으로 잡아 올렸다.

정씨는 “고기들은 중국 어선의 그물이 터지면서 백령도쪽으로 떠밀려 온 것들이었다”며 “중국 어선들이 얼마나 많은 수산물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당국은 거의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해양경찰청 관계자는 “올들어 지금까지 우리 영해에 침범해 조업활동을 벌인 중국 어선 80여척을 나포해 조사했다"며 "우리가 북한과의 충돌 우려 때문에NLL 인근 해역에서 단속을 하기 어려워 우리 영역을 넘어오는 중국 어선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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