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응급실 / 조너선 캐플런 지음ㆍ홍은미 옮김 / 서해문집 발행ㆍ496쪽ㆍ1만2,000원
인종차별 정책이 만연했던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케이프타운 의대를 다니던 조너선 캐플런은 죽음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종에 따라 시신이 안치되는 곳도, 시신의 상태도 달랐다. 스쿠버다이빙 혹은 암벽타기를 하다 사고가 났거나, 외로움으로 자살을 해 실려온 백인의 시신은 비교적 말쑥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창에 찔리고 도끼에 찍혀 내용물이 다 드러나 있거나, 몸 전체가 숯덩이가 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경험은 그가 영국과 미국에서 수련을 마치고 외과 의사가 된 후에도 안정된 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세계 각국의 오지를 찾아 다니게 하는 동인이 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음과 절망에 대항해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며, 의술이란 삶의 최전방에서 계속되는 전투다.” 터키-이라크 접경 지역에서 출발한 그의 ‘전투’는 미얀마, 모잠비크 등 내전 지역뿐만 아니라 브라질 아마존강의 수은 중독 현장까지 이어진다. 남중국해를 오가는 유람선과 항공기 역시 그에게는 전장이었다.
캐플런은 이 책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피범벅의 수술 현장과 삶과 죽음이 오가는 치열한 순간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기록한다. <아름다운 응급실> 이라는 책 제목과 달리 내용은 결코 감상적이지 않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독자들이 느끼도록 할 뿐, 좀처럼 책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환자가 하나씩 목숨을 잃어갈 때면 의사들의 영혼은 작아진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속죄 받으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이 일을 계속 해나간다”는 에필로그 속 저자의 말은 그래서 울림을 더한다. 아름다운>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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