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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재이(災異)와 네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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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재이(災異)와 네 탓

입력
2006.11.1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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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사퇴의 변을 밝히면서 이런 말을 했다. "마치 비가 안 오면 옛날에 왕의 책임인 것처럼…." 정부는 최선을 다 했는데 북한의 핵 실험이 정부 책임인 양 과다하게 비난하는 세력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친 표현이다.

사극 같은 데 보면 비가 안 온다고 임금이 소식(小食)을 하는 등 극도로 근신하면서 기우제를 올리는 장면이 가끔 나온다. 유학이 통치이념이었던 나라에서 왕왕 벌어지는 이런 이벤트는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 대학자 동중서가 제창한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에 이론적 토대를 두고 있다.

■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늘과 사람은 서로 느낌이 통한다는 주장인데 기실은 하늘과 최고통치자의 관계를 해석한 이론이다. 하늘은 왕이 정치를 잘하면 복을 내리고, 못하면 가뭄, 홍수, 지진, 혜성,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는 변괴 같은 재난과 이변(災異)을 내려 꾸짖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통치자는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며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조선의 왕들이 재이에 극도로 민감했던 것은 왕권은 사람이 아니라 신성한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선전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하늘이 내리는 각종 천문ㆍ기상학적 현상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했다.

■ 그런데 그들은 정말 자기가 잘못해서 태양의 흑점 활동이 심해지고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을까? 조선조 역대 임금을 통틀어 실록에 재이 기록이 가장 많은 왕은 세종대왕이다. 사소한 기상이변에도 노심초사하는 기록을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반면 재이 기록이 가장 적은 왕은 연산군이다. 그는 재이가 있으니 근신하라는 신하들의 요구를 견제와 핍박으로 해석하고 단호히 물리쳤다."옛날 요임금 때도 9년 홍수가 있었고, 탕 임금 때도 7년 가뭄이 있었으니 어찌 요와 탕의 덕이 부족해서 그랬겠느냐? 자연현상의 우연이지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 성인이 다스리던 시절에도 변고는 있었는데 무슨 비과학적인 소리냐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세종 때 재이 기록이 많은 것은 재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임금이 아무리 사소한 재이라도 철저히 관찰ㆍ기록하도록 명했기 때문이다.

연산군 때 정반대인 것은 나중에는 아예 재이를 기록하지 말라고 한 탓이다. 두 통치자 중 누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이 습관처럼 '네 탓'을 하는 요즘, 애먼 별똥별까지 붙잡고 '내 탓'이라고 했던 세종이 새삼 생각나서 해 본 얘기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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