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기, 그 중에서도 강남 집값 잡기가 경제정책의 중심이 된지 오래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결정할 때도 집값 눈치를 보아야 하고 세제 개편도 부동산 부자를 목표로 한 바 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부동산 가격만큼은 잡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집값만큼은 잡으려는 절박함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조롱이나 하듯 올라가고 있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 잘못 설정된 정책목표가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강남 집값'은 잘못된 목표 설정
참여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목표를 집값 잡기가 아니라 서민주택의 공급 확대와 부동산 세제 정상화에 두었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강남 집값이 어떻게 되든 서민주택 공급에만 노력한다면 신도시 건설기간 중 기존 집값이 올라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새로 지을 신도시가 강남 수요를 대체해야 할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버스를 타고 다닌다면 버스값만 안정시키면 되지 굳이 비싼 외제차 가격까지 정부가 안정시킬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정책 운용에 이런 여유가 생기면 땅값 비싼 강남에 작은 평수 아파트 신축을 의무화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강남에 대형 아파트를 지어 비싼 값으로 판 뒤 그 돈으로 도심 근교에 서민주택 공급을 늘렸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했다면 강남 집값 잡기에도 유리했을 수 있다.
계층간 위화감을 이유로 강남 집값 잡기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자를 응징하기보다 서민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 주는 편이 위화감을 없애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또한 강남 집값이 오르면 다른 집값도 따라 올라 온 국민이 투기에 나서게 되니 강남 집값만은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중산층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끼리 투기를 하다 돈을 벌든 망하든 정부가 책임질 이유가 있겠는가? 정부는 투기도 못하는 서민들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일에 우선 주력하면 된다. 투기가 염려되더라도 그로 인해 금융기관이 부실화되지 않도록 건전성 감독을 통해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보유세 강화도 세제 정상화보다 집값 잡기에 연결시킨 게 화근이었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나라 세제는 부동산 부자에게 유리했다.
시가보다 낮은 장부가를 기준으로 보유세를 결정하고 주택의 특수성을 이유로 각종 세제 혜택을 주다보니 우리 국민들은 부동산을 과다 보유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강남 집값을 잡으려고 보유세를 급격히 인상하자 급증한 세금 부담으로 소비수요가 위축되고 조세저항이 커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다.
●서민주택 공급ㆍ세제 정상화부터
보유세 인상 목표를 집값 잡기가 아니라 다른 자산과의 과세 형평성 회복에 두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집값과 관계없이 장기간에 걸쳐 보유세율을 조정하겠다는 여유를 가졌다면 세제 형평성 개선과 함께 국민들이 새로운 세제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집값 자체를 정책목표로 삼고 이런저런 정책 수단을 동원하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집값에 민감하게 되었고 백약이 무효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제부터라도 집값 자체를 목표로 하지 말고 꾸준히 서민주택 공급을 늘리는 편이 오히려 집값 잡기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이라도 그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겸손함을 배워야 할 때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두고 시장 무서운 줄 알아야 된다고 표현한다.
이창용ㆍ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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