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드냐고? 대신 젊음을 되찾았잖아. 매일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니 건강에도 좋고.”
주말인 11일 서울 마포구 지하철 5호선 공덕역. 전동차가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오자 계단을 내려가던 서성(69)씨의 발걸음이 재빨라진다. 잽싸게 전동차에 올라탄 서씨의 숨소리가 가쁘다. “1분이라도 빨리 가야 돼. 늦으면 ‘노인네들이 다 그렇지’라고 비아냥댈 거 아냐.”
서씨가 맡은 일은 지하철을 이용해 물건이나 서류를 배달하는 퀵서비스다. 4월부터 노인 퀵서비스 전문업체 ‘사랑의 퀵’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6년간 일해온 아파트 경비를 그만 둔 뒤 힘들게 잡은 일자리다. 3,4건 정도 배달하고 나면 하루 해가 저문다. 한 달 수입은 40만원 남짓이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욕심 안 부려. 소일거리도 되고 용돈벌이로는 그만이지. ”
자녀 3명을 둔 주부 정미란(41)씨는 결혼 15년 만에 잃어 버렸던 자기 이름 석자를 되찾았다. ‘아줌마’나 ‘누구 엄마’ 대신 번듯한 명함을 하나 얻었다. 7월부터 문화재 해설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처음 가진 직업이다. 박물관이나 고궁, 사적지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화재와 역사 등을 가르친다. “밖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가르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요. 수업 한번 하고 나면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요.”
정씨가 부업 전선에 뛰어든 것은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돼 가는 것 같아서” 였다. 돈도 벌고 싶었다. “결혼하고 애 낳고는 ‘애 엄마’로만 불렸죠. 다른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어색할 정도였으니까요. 돈 벌어 가계에 보탬이 되고 이름도 찾고, 정말 살 맛 납니다.” 그는 교육여행업체 ‘여행이야기’ 소속이다. 주말 동안 서울 시내 박물관이나 지방 유적지를 돌며 월 70만~80만원 정도 번다.
일자리 구하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주부와 고령자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취약계층 고용촉진사업이 관심을 끌고 있다. 공단이 선정한 사회복지법인 등 관련 기관 126곳에서 실버퀵, 문화재 해설사 등 41개 직종에 대한 직업교육을 한다. 수강료는 무료이며 서씨와 정씨도 이 사업을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
교육 내용과 사후 관리가 부실해 비판을 받는 정부의 다른 일자리 창출 사업과 달리, 공단의 이 사업은 호평을 받는다. 정씨는 “처음으로 세금을 낼 만한 가치를 느꼈다”고 말했다. 올 처음 시행된 이 사업에는 10월까지 6,867명(올 목표 7,800명)이 교육 받아 5,637명(82.4%)이 일자리를 구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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