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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참주(僭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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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참주(僭主)

입력
2006.11.1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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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의 리디아는 B.C. 7세기에 인류 최초로 화폐를 주조했다. 화폐 주조의 주인공은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로 유명한 기게스 왕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리디아는 화폐 주조의 기원이기도 했지만 ‘참주’라는 말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기게스가 최초의 참주였다. 한자어 ‘참주(僭主)’는 ‘진정하지 않은 왕’, 즉 정통성 없는 왕을 뜻한다.

서양에서도 ‘절대적 권력자’나 ‘폭군’이란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리디아어 ‘참주(Tyrannos)’는 신성권력과 대비되는 세속권력의 통치자를 가치중립적으로 가리켰다.

■기게스 이야기는 여러 변용이 있지만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리디아 왕 칸다울레스는 왕비가 세계 최고의 미녀라고 여기고 늘 측근인 기게스에게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그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직접 왕비의 알몸을 엿보라고 기게스에게 명령한다.

기게스는 겁이 나서 “여자는 속옷과 함께 부끄러움을 벗어 던지는 존재”라고 사양하지만 왕의 거듭된 강권에 못 이겨 문 뒤에 숨어서 왕비의 알몸을 엿본다. 이를 알아차린 왕비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수를 다짐한다. 기게스는 왕비의 뜻대로 왕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한다(헤로도투스의 <역사> ).

■플라톤의 <국가> 에 나오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왕의 양치기인 기게스의 조상은 큰 홍수와 지진이 끝난 후 땅이 갈라진 틈에서 속이 빈 청동 말을 발견, 그 속에 누워 있는 시체의 손가락에서 금반지를 빼어 가졌다. 이 반지는 안쪽으로 돌리면 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밖으로 돌리면 모습이 보이게 하는 요술반지였다.

반지의 비밀에 눈뜬 기게스는 왕의 사자가 되어 왕비의 처소에 드나들다가 정을 통하게 되고, 왕을 시해한 후 왕권을 잡았다. 두 이야기는 쿠데타나 하극상을 통해 전통적 신성권력이 새로운 세속권력으로 바뀐 역사적 사실을 시사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조도 흥미롭다. 세속권력의 창시자인 기게스는 늘 모습(실상)을 감추려고 했다. 칸다울레스가 상징하는 전통적 권력은 왕비의 알몸까지 보여주려 했지만, 기게스는 문 뒤에 숨거나 반지의 조화 속에 몸을 감추었다. 금반지의 다른 이름인 주조화폐도 자신의 모습(허상)을 새김으로써 참모습을 감추는 수단이다.

왜 대중적 지지에 기반한 권력일수록 대중과 멀어지고, 권력자가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할수록 권력자는 대중에게 허상만 전하는지를 일깨운다.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서 ‘개혁참주’의 무능한 참모습을 보게 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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