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서니 어쩔 수 없이 허전하고 쓸쓸한 심정입니다.”
물러나는 노(老) 외교관의 뒷모습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37년간 정들었던 일터를 떠나는 섭섭함이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묻어났다. 물론 앞으로 맡을 막중한 임무에 대한 책임감도 강조했다.
한국의 대표 외교관에서 최고의 국제공무원,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0일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1970년 5월 외교부에 들어온 지 37년 만이다. 외교부 장관 재임 2년 10개월 동안 그가 방문한 나라는 모두 111개국이었고, 374회의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해외에 머물렀던 기간이 357일에 이를 정도로 바삐 움직였던 반 장관은 이임하는 날도 역시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전 6시 기상한 그는 우선 국회를 들렀다. 평소 현안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선 적이 있지만 이날은 달랐다. 국회가 유엔사무총장직 수행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반 장관에게 특별히 고별연설의 기회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고별연설에서 반 장관은 자부심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저의 선출은 분단국이고, 북핵 문제 당사국이며, 미국과의 군사동맹국이란 이유로 한국인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어렵다는 우리 스스로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고 평가했다.
반 장관은 또 “저는 한국의 사무총장은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인 사무총장”이라며 “특히 제가 직접 관여해왔던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유지에 대해서는 사무총장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조속한 시일 내에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한 반 장관은 곧바로 외교부 청사로 향했다. 오전 11시 시작된 이임식은 축제 분위기였다. 반 장관이 식장에 입장하자 ‘I ♡ 반기문’, ‘추카추카 기문오빠’ 같은 피켓을 손에 든 여직원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반 장관은 “보통 장관직을 떠나는 사람은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는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돼) 기쁜 마음으로 이임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여러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하면서 오순도순 얘기할 기회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무인도에 내동댕이쳐진 듯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낀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외교관으로서 외교 일선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조국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며 외교 다변화와 선진화 성과를 나열하고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인 사무총장으로서 세계인 앞에서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지속적인 협조를 당부한다”며 송민순 장관 내정자를 중심으로 한 단결도 부탁했다.
반 장관은 직원들과 환송 리셉션 및 오찬을 함께 한 데 이어 간부, 출입기자들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오후 1시50분 외교부 청사를 떠났다. 반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직 인수인계를 위해 15일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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