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의 집무실 책상에는 한반도 위성사진 한 장이 깔려있다. 불빛 한 점 없는 북한과 대낮처럼 환한 남한의 야경이 대조적인 사진을 들여다 보며 럼스펠드 장관은 한반도 문제를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 럼스펠드 장관이 경질됐다. 미국의 국방장관 교체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변화로 이어질까.
럼스펠드 장관은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대북정책에서 강경 드라이브를 걸어온 대표적 매파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였고,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화의 여지가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부시 정부 내 네오콘들의 지지를 받은 그의 강경한 대북관이 북한을 더욱 벼랑끝 전술에 매달리게 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그는 지난달 3일 북한이 핵실험 강행 의사를 발표한 직후에도 “북한이 핵 실험을 하고 핵기술을 확산하면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감추지 않았다.
때문에 럼스펠드의 경질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조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까지 북미 양자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당장 코앞에 닥친 북핵 6자회담에서 미국이 보다 유연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 정가에서 북미양자 회담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시 정부가 조만간 임명할 대북정책조정관을 보면 정책변화의 폭을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기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럼스펠드 장관의 경질은 이라크 정책 실패에 대한 문책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이철기 동국대(국제관계학)교수는 “네오콘의 중심인 딕 체니 부통령이 버티고 있는 한 대북 강경책의 큰 틀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럼스펠드 장관의 경질은 한창 협상이 진행중인 한미 군사동맹 현안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우리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국방부 한 당국자는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과 함께 2009년 조기이양을 강력히 밀던 럼스펠드 장관의 낙마는 우리측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한국국방연구원 김재두 연구원은 “미국이 대이라크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경우 자이툰 부대의 철군 논의도 좀 더 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럼스펠드 독트린’으로 불리는 해외미군기지 재편계획(GPR)이 조정될 경우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부하들이 숨도 못 쉴 정도로 밀어붙이던 럼스펠드 장관이 사라진 만큼 각종 현안 협의에도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럼스펠드 장관이 강조하던 군대의 경량화 신속기동군화의 퇴조도 예상되면서 주한미군의 추가감축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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