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로 시작해서 ‘온 몸에서 눈물이 차오른다’로 끝을 맺은 대하소설 <혼불> . 작가 최명희(1947~1998)가 1996년까지 17년을 피를 토하고 영혼을 쥐어짜며 써내려간 소설이다. 일제 강점기 양반가를 지켜온 3대에 걸친 며느리들과 거멍굴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민초들의 생활상과 전통관습을 순우리말로 생생하게 복원해낸 글이다. 혼불>
소설의 무대가 그대로 살아있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 그곳이다. ‘꽃심을 지닌 땅’ ‘아소님하(아아, 님아)’를 새긴 장승이 마을 입구에서 객을 맞는다. 노봉마을은 최명희 부친의 고향이다. 작가는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노봉마을에서 방학 등 유년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가을 추수를 끝낸 허허로운 들판에서는 소설 <혼불> 에서 우러나던 애련함이 감돌고 있다. 마을 길을 휘휘 돌아 처음 찾은 곳은 ‘혼불문학관’. 소설 <혼불> 에 혼을 불사른 작가의 뜻을 기리고자 2004년 개관했다. 혼불> 혼불>
효원과 강모의 혼례식, 강모와 강실의 소꿉놀이 등 소설 속 주요 장면들이 디오라마(축소모형)로 재연돼 있다. 문학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가가 아꼈던 ‘몽블랑’ 만년필과 그것으로 꾹꾹 눌러쓴 친필의 원고지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작가가 17년을 혼을 바쳐가며 <혼불> 을 쓰며 남긴 말이다. 다른 글들과 달리 유독 이 소설을 읽을 때 한 구절, 한 단어가 알알이 가슴을 파고 들었던 이유다. 혼불>
너른 잔디밭과 물레방아 등을 갖춘 문학관 옆에는 청호저수지가 있다. 소설에서 청암부인이 가뭄을 대비해 팠다고 묘사한 못이다.
문학관에서 다시 내려와 마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위로 오르면 고샅 끝자락에 솟을 대문 우뚝한 종택이 있다. 청암부인, 율촌댁, 효원의 종부 3대가 살던 원뜸 종가다. 꼿꼿한 이기채가 춘복이를 멍석말이 했다는 사랑채 앞 마당은 꽤나 넓었다.
마을 입구의 ‘서도역’도 소설의 주요 무대다. 효원과 강모, 두 주인공이 새로운 인생을 열게 되는 매개체인 곳이다. 효원이 매안으로 신행 올 때 처음 느낀 남원의 모습이었고, 강모가 전주로 학교를 가고 만주로 도피할 때 거쳤던 곳이다. 지금 서도역에는 열차가 다니질 않는다. 전라선 철도 이설로 사라질뻔한 역사는 <혼불> 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모아져 남게 됐다. 남원시가 1930년대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 나무로 지은 역사, 녹슨 철로, 수동 신호기가 그 시절 정지된 화면으로 멈춰있다. 남원시는 이곳을 영상 촬영장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혼불>
전주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남원으로 가다가 사매면에서 서도리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한다. 여기서 혼불문학마을까지는 4km 정도. 중간에 서도역을 만난다. 혼불문학관 www.honbul.go.kr (063)634-8004
남원=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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