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북부의 몬태나(Montana)주가 배경이었다는 것 외에는 줄거리는 물론 지명과 배역도 가물가물하지만,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ㆍ1992)> 의 잔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흐르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하고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이 돋보인 것으로 더욱 유명한 이 영화는 낚시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전형적 미국 가정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냈다. 황홀한 풍광을 지닌 강에서 플라잉 낚시로 송어를 잡는 장면 등과 서정성 짙은 대사가 만들어낸 감흥은 좀처럼 잊기 힘든다.
▦ 몬태나의 면적은 남한의 4배가 넘지만 주민은 90만명 선에 불과하다. 동쪽은 그레이트 플레인즈로 불리는 대평원이고 서쪽은 록키산맥의 등줄기가 지나가는 이 주를 여행해 보면 광대무변(廣大無邊)이란 말이 실감난다.
주의 공식 별칭은 과거의 금광 특수를 반영한 'Treasure State' 이지만, 주민들은 높고 푸른 하늘을 뜻하는 'Big Sky'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피트가 <가을의 전설(1994)> 에서 다시 만났던 몬태나는 레드포드가 감독ㆍ주연을 맡은 <호스 위스퍼러(調馬師ㆍ1998)> 의 무대로 새로운 울림을 낳았다. 호스> 가을의>
▦ 연방 상원의원 선거의 초박빙 접전지로 관심을 끈 몬태나주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12월 4~8일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 개최지로 주 애칭을 빌려온 외딴 리조트 소도시 '빅 스카이'가 선정된 까닭이다.
몬태나는 주 전체 물 소비의 97%가 축산업에 사용되는 '비프 벨트(Beef Belt)'의 대표로 꼽힌다. 한국의 쇠고기 수입개방 관문을 넓힐수록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감귤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민원을 전하기 위해 한국이 제주도에서 4차 협상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 곳 출신 정치인들이 기민하게 유치에 앞장선 이유다.
▦ 몬태나주는 사실 미국인들도 가기 쉽지 않은 곳이고, 빅 스카이는 더욱 그렇다. 한미 양국의 FTA 반대투쟁단의 접근성이나 활약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3차 협상이 열렸던 서북부 끝단 워싱턴주의 시애틀은 대도시인데도 당시 투쟁단의 조직 동원에 한계가 있었다고 하니, 그보다 훨씬 외진 빅 스카이에선 반대시위의 전략도 새로 짜야 할 판이다.
어쨌든 동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던 곳이 민주당의 의회 장악에 따른 양국 협상단의 갈등 심화와 반대투쟁단의 고함으로 얼룩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나마 작은 성과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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