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계열사간 환상(고리)형 순환출자금지가 불러올 수 있는 재벌해체 등의 큰 파장을 줄이기 위해 재벌그룹 내 사업지주회사 간의 순환출자는 허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9일 열리는 관계 장관 회의에서 이 방안을 중심으로 재정경제부 등 다른 정부부처와 재계를 설득해 돌파구를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재계는 조건없는 출총제 폐지를 주장하며, 공정위의 정책방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입법과정에서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공정위의 대안
7일 공정위가 구상하고 있는 방안에 따르면 만약 삼성그룹이 복잡하게 얽힌 계열사간의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3개의 주력기업 위주의 사업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경우, 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생명의 간 순환출자는 규제하지 않게 된다. 사업 지주회사 간의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각각의 사업지주회사와 자회사별로 그룹이 완전히 나뉘게 돼, 재벌 해체의 충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재계의 반발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또 일반 지주회사와는 달리 사업지주회사에는 자회사지분 보유 규정 등을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현재 일반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 30%이상, 비상장 자사회의 지분 50%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수직으로 자회사나 손자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는 ‘형식적 요건’만 갖추도록 할 예정이다. 자회사 지분 30% 이상 의무보유와 같은 규정을 적용할 경우, 재벌들이 지분을 사들이는데 엄청난 돈을 써야 하는 현실적인 한계를 감안한 것이다.
공정위는 자산규모가 2조원이 넘는 36개 중핵기업에게는 총 자산의 25% 이상을 출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출자총액제한제를 유지할 방침인데, 사업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재벌은 이 같은 중핵그룹 출총제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공정위 내부에서도 순환출자 금지에 예외를 두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간 순환출자로 가공의 자산을 만들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순환출자의 폐해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한편 9일 권오승 공정위장과 권오규 경제부총리,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이 순환출자 금지 방안에 대해 의견을 조율할 예정이다.
재계의 반발
재계는 공정위의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에 대해 ‘혹을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는 격’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기존 출총제는 출자총액만 한정하지만 순환출자 규제는 출자 대상과 형태까지 제한하는 것이어서 오히려 규제가 강화되는 ‘개악’이라는 주장이다.
설령 사업지주회사에 대해 제한적으로 순환출자를 허용하더라도 주요 재벌 그룹들의 현 소유구조상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계는 순환출자가 규제될 경우 계열사간 자금조달이 불가능해져 대규모 투자가 막힐 것을 우려한다. 실제로 순환출자 규제도입 시 삼성전자는 출자가능한 주력 계열사가 15개에서 4개로, SK텔레콤은 10개에서 3개 계열사로 줄어든다. 현대차의 경우 8개 주력계열사 중 출자가능한 계열사가 단 하나도 없게 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 자동차 등에서 우리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리스크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순환출자를 규제하면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막혀 결국 국가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알짜 계열사들이 외국계 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 A)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지는 것도 문제다. 대기업이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보유지분을 우호주주 아닌 제3자에게 팔아야 하는데, 이 틈을 타 외국펀드들이 주식을 대량 매집할 경우 경영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순환출자를 규제하면 기업집단 소유지배구조의 핵심고리가 해체돼 기업이 와해되고, 기업 인수ㆍ분사ㆍ계열분리 등 기업 구조조정이 어려워지는 만큼 조건 없이 출총제를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이진희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