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자 '박래부 칼럼' <'정권'과 '좌파'라는 표현>은 매우 유익했다. '정권'이라는 용어의 역사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 하는 점이 있어 그걸 말씀드려 볼까 한다.
박 수석논설위원은 "'정권'은 정부를 폄하하거나 정통성을 부인하는 표현"이라며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출범한 노무현 정부를 '정권'이라고 부르는 것이야말로, 정통성과 일관성을 부인하는 모순"이라고 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선의의 용법을 구제해 '정권' 개념을 유연하게 쓰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정권(政權)은 정부를 지배하는 정치권력을 의미한다. 정부는 광의적ㆍ형식적ㆍ행정적 개념인 반면, 정권은 협의적ㆍ내용적ㆍ정치적 개념이다.
● 민주화로 빛 본 '정권' 개념
박 수석논설위원은 "우리 신문에서 특이한 현상은 독재체제에서는 보이지 않던 '정권'이라는 표현이, 민주주의가 진행될수록 눈에 띄기 시작하는 점"이라며 "독재 정부 아래서는 '정부'라고 호칭하고, 민주 정부에는 '정권'이라고 부르는 게 고작 언론의 자유였던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 물음의 선의엔 공감하면서도 정권교체를 포함한 민주주의 자체가 불가능했던 독재체제와 비교해 오늘의 정치용어 사용법을 문제삼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가능해지면서 '정권' 개념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평소 '정권'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동시에 '정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고 싶을 때에 '정권'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정부란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변치않는 항상성과 안정성을 가져야 하지만, 정부를 사실상 구성하는 관료사회는 정치 바람에 매우 약하다. 게다가 관료는 기득권 수호엔 탁월한 재능을 보이지만, 공복(公僕) 의식은 박약하다.
고시 후배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옷을 벗는 서열문화도 강하며, 정권 핵심부에 줄이 닿느냐 여부에 따라 고속승진을 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소신과 책임감보다는 충성과 아첨이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건 여전히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늘 '정부'보다는 '정권'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 정권에 적대적인 보수신문들뿐만 아니라 공정성이 돋보이는 한국일보 지면에도 '노무현 정권'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노태우 정권 이래로 늘 그랬던 것이지 노무현 정권 들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다.
박 수석논설위원의 칼럼 바로 밑에 실린 황영식 논설위원의 '지평선'<깔때기 구멍> 칼럼에도 '정권'이라는 표현이 3번 등장한다. 흥미로운 건 황 논설위원이 '정부'라는 표현도 2번 사용했다는 점이다. 깔때기>
부동산정책의 행정적 주체를 언급할 때엔 '정부'를, 그 행정력을 지배하는 주체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오만과 도취를 비판할 때엔 '정권'이라고 했다. 정확한 용법이라고 생각한다. 황 논설위원이 '정권'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정부를 폄하하거나 정통성을 부인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노 정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 '정부의 정권화' 견제해야
사용자들이 의도하진 않았을망정 '정권'은 한국사회 특유의 '지도자 추종주의'를 내포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보스정치'는 타파되었다지만, 대통령 권력의 무시무시함은 여전하다. 열린우리당의 탄생이 그 생생한 증거다.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임기초엔 대통령 줄에 서다가 임기 말에 다른 줄로 바꾸는 건 익숙한 풍경이다.
어찌 관료사회만 탓할 수 있으랴. 나는 '정권'이라는 표현을 자제하기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정권화'에 주목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정권'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