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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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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면

입력
2006.11.0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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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명한 군사(軍史)학자 마이클 하워드 경(卿)은 1958년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를 창설, 핵 군비경쟁 연구에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그는 2000년 냉전을 회고한 저서 '평화 만들기'(The Invention of Peace)에서 냉전시대 핵 대치에 대한 서방사회의 인식을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첫 번째 유형은 전쟁을 배제하지 않으며 핵무기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주장으로 서유럽보다 미국에서 목소리가 컸다. 두 번째는 기존상황을 현실적으로 최선의 평화 질서로 수용, 핵 억지력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인식으로 유럽과 미국의 다수 여론이었다.

마지막 유형은 핵 억지력을 안전장치 아닌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 핵 군축을 외친 반핵평화 운동이다. 유럽에서 대서양 건너로 확산된 평화운동은 서방이 먼저 소련에 대한 핵 위협을 중단하면 소련도 호응할 것으로 기대했다.

● 냉전시대 핵 대치 교훈 되새겨야

하워드는 동서 냉전은 핵전쟁과 일방적 군축, 어디에도 이르지 않은 채 세월과 함께 완화됐지만 데탕트가 그저 얻은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쿠바 미사일 사태와 베트남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과 소련 모두 핵 게임의 가공할 위험을 깨닫고 이념적 소명보다 현실의 국익을 중시하는 실용주의로 전환한 것이 계기가 됐다.

소련은 내부문제 해결에 몰두했고, 미국의 키신저와 닉슨은 외교적 타협을 통한 적절한 힘의 균형, 옛 유럽의 세력균형 외교를 추구했다. 이런 데탕트는 냉전 막바지 레이건의 강경노선으로 흔들렸지만 서방사회가 냉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희망과 절제를 지킨 바탕이다.

낡은 냉전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한가할지 모르나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지혜를 담고 있다. 냉전의 전초기지로 반세기 넘게 고통을 겪은 우리가 냉전이 끝난지도 오랜 마당에 새삼 핵 위협을 고민하는 현실은 지극히 부당하다.

그러나 당혹감과 노여움을 절제하지 못해 냉전의 질곡 속으로 퇴행하지 않으려면 어떤 선택이 평화 만들기에 도움될지를 성찰해야 한다.

옥스퍼드와 예일대 석좌교수를 지낸 하워드는 미국의 주류 정치 엘리트는 키신저나 닉슨과 달리 과거 유럽처럼 도덕적 이상과 탐욕이 어울린 제국주의적 소명에 여전히 이끌린다고 보았다.

사회 저변에도 정의와 힘을 앞세워 악을 응징하고 영토를 넓힌 개척시대 '잭슨 대통령의 호전성'(Jacksonian bellicosity)이 뿌리깊다고 분석한다. 그 것이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소명과 국익을 앞세워 해외 개입을 일삼으며 스스로 갈등하고 방황하는 근본이다.

미국을 깊이 연구하지 않아도 대충 아는 이야기를 한 것은 우리사회에 갑자기 늘어난 평화 전문가들이 스스로 논리적 출구를 봉쇄한 채 잭슨 식 호전성을 어설프게 자랑하기 때문이다.

북한 핵을 용납할 수 없기에 이를 지원한 꼴인 포용정책은 악덕이고, 이제 유일하게 기댈 동맹 미국의 어떤 강경책이든 좇아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고 선동하는 이들의 맹점은 미국의 강경파처럼 전쟁도 무릅쓸 각오이거나 그런 극한상황이 실제 닥칠 것으로 믿지 않는데 있다. 그저 정권이 인기 없고 무능하니 그런 처신이 현명하다고 믿는 기회주의가 두드러질 뿐이다.

● 여론 외면한 기회주의적 강경론

반론이 많겠지만 이쯤에서 냉전 인식에 대한 하워드의 평가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 미국의 강경론은 냉전이든 열전이든 실제적 위협과 거리 멀다. 영국이 이를 추종한 것도 유럽대륙의 핵 대치에서 떨어진 것이 작용한다.

반면 핵 대치에 대한 불안이 큰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대륙은 공산권과의 타협과 소통을 추구한 헬싱키 체제구축에 앞장섰다. 그게 독일 통일의 토대이고, 유럽이 미국에 앞서 전쟁에서 영구히 해방된 바탕이다.

우리사회 다수 여론은 이런 교훈을 체득했다고 본다. 북한 핵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떠들썩하게 논란하는 우리사회 엘리트들은 흔히 말하는 여론에 대한 도덕적 권위를 지녔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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