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의 윤곽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에 이어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가 사법처리 대상에 올랐다.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당시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에 대한 사법처리도 검토 중이다. 이들은 금융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행장의 구속영장 발부로 수사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검찰은 변 대표와 김 부위원장의 혐의를 놓고 막판까지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검찰 내부 논의를 거쳐 이 전 행장의 배임 공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행장이 외환은행의 부실자산을 과대평가하거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의도적으로 축소해 실제 가치를 떨어뜨린 뒤 2003년 론스타에 매각한 혐의를 이미 밝혀냈다.
검찰의 남은 과제는 ‘몸통’을 규명하는 것이다. 론스타에 매각하기 전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수출입은행 등 정부기관이었던 만큼 변 대표 등보다 윗선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검찰은 구속된 이 전 행장의 자백을 이끌어내 추가 연루자를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사법처리한 사람은 외환은행 매각자문사 선정 과정에서 금품을 주고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박순풍 엘리어트홀딩스 대표와 전용준 전 외환은행 경영전략부장 정도다. 하지만 이마저도 곁다리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전 행장이 사실상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수사에서 처음 사법처리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 행장은 특히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로 지목돼 온 만큼 이 전 행장의 구속으로 검찰은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다. 앞서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 전 행장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 전 행장을 외부와 단절시켜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이 전 행장에 대한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향후 수사에서 예상 외의 추가 사법처리 대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전 행장이 검찰의 바람대로 입을 열지는 미지수다. 이 전 행장은 그동안 검찰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내심 이 전 행장이 구속으로 인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칼자루를 쥐게 된 것은 사실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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