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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준비 덜 된 立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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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준비 덜 된 立冬

입력
2006.11.0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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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김남주는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요즈음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오늘은 입동(立冬). 시인이 본 입동은 '조그만 여유를 갖고, 미물을 위해서도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일 터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입동에 김장을 하면 겨울이 유난히 춥다'는 미신까지 만들어 하루라도 늦게 무 배추를 다듬었다.

김장은 곧 월동준비이기에 되도록 천천히 겨울을 맞고 싶은 속내가 깔려 있다. 절기는 추위를 경고하지만 여름과 가을의 편안함을 좀더 누리고 싶은 게다.

■ 입동은 다시 3개의 절기로 나뉜다. 소설(小雪ㆍ22일)까지 5일씩 3후(候)로 구분했다. 초후(初候)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엔 땅이 얼어붙으며, 말후(末候)엔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했다. 입춘 입하 입추와 같이 춘하추동의 시작이지만 굳이 입동을 세세히 나눠 놓은 것은 준비의 엄정함을 경고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풍요 이후의 환절(換節)은 그만큼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다. '꿩은 사라지고 조개가 잡힌다'는 경구는 '사치와 풍요가 다했으니 구황식품(조개는 옛날 천한 음식이었다)이라도 잘 준비해 두라'는 의미다.

■ 경남 섬 지방에 '갈가마귀 날아오니 입동이라'는 말이 있다. 갈가마귀는 동남아에서부터 지중해 동쪽, 이스라엘과 중동에 서식하는 철새다. 갈가마귀는 성경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준비'라는 의미로 비유된다.

노아의 방주에 나오는 한 쌍의 비둘기가 곧 그것이며, 광야에 살았던 선지자 엘리야는 하나님의 보살핌에 의해 갈가마귀가 매일 아침저녁 물어다 주는 빵으로 연명할 수 있었다. 입동 때 햇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고사를 지낸 뒤 노인과 불우이웃에게 나눠주던 '치계미(稚鷄米)'도 '엘리야의 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올 입동은 유난히 성큼 다가왔다. 이틀 새 평균기온이 10도 이상 내려가더니 오늘 아침엔 서울 곳곳에 얼음도 얼었다 한다. 짧은 소매가 길어지기도 전에 외투를 꺼내야 했다. 까치밥까지 다 따먹고 김장도 못했다.

조개를 잡지도, 치계미를 장만하지도 못했다. 아무 준비 없이 겨울을 맞은 대한민국의 이야기여서 마음이 떫고 시리다. 점(占)에 따르면 '입동 때 추우면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춥다'던데…. <모든 것 떨궈 빈 마음 몸으로 홀가분하게 모진 세월 인내는 쓰니 이 꽉 물고 참아라 꽃피는 봄날 열매는 달다 살아야 맛보느니(최광일)>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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