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장님 너무 착해요. 나쁜 말 안 해요. 삼겹살도 잘 사줘요.”
5일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는 노동부 주최로 한국인 사용자와 외국인 근로자의 화합을 위한 단축마라톤대회가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장호철(49) 사장과 마르벨(36ㆍ여) 크리스티나(35ㆍ여) 놀만(29) 등 필리핀인 3명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고려실크인쇄에서 함께 잉크밥을 먹는 사이다.
장 사장은 “세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망한 공장을 살려줬다는 것이다. 장 사장은 2004년 10월 인쇄공장을 열었다. 고아로 절에서 자란 뒤 중학교를 중퇴하고 30여년 간 인쇄근로자로 일해 오던 그에게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1개월 뒤 공장에 불이 나 모든 것을 잃었다. “다 포기하고 죽으려고 한강도 여러 번 갔죠. 입에 대지도 않던 소주까지 마셨어요. 마신 소주는 도로 눈물로 나왔답니다.”
화재 1개월 뒤 장 사장은 여기저기 빚을 내 다시 공장을 차렸다. 재기는 힘들었다. 어렵게 일감을 따와도 냄새 나고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벨이 공장에 들어온 것이 이 무렵이다. 마르벨은 악바리였다. 시간 외 근무와 1주일에 두 번 정도 하는 철야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르벨의 도움으로 공장은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이곳에 들어온 크리스티나도 엄청난 일꾼이었다. 활달한 성격 덕에 외국인 친구도 많았다. 그의 친구들은 공장 일이 바쁠 때면 기꺼이 와서 도와주는 듬직한 지원군이다. 놀만은 지난해 10월 공장 식구가 됐다. 다른 공장에서 사장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놀만에게 볶음밥 한 그릇을 사주며 위로한 것이 인연이 됐다.
장 사장에게 세 사람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일감이 없어 적자가 나도 빚을 내 월급은 꼬박꼬박 줬다. 두 해에 걸쳐 연이어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한 마르벨에게는 비행기 표를 끊어줘 1개월 간 필리핀에서 머물고 오도록 했다. 지난해 크리스티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올 추석에는 놀만에게 필리핀 왕복비행기표를 사줘 15일간 고향에 갔다 오게 했다. 이들이 사는 월셋방의 보증금과 월세도 내주고 있다.
장 사장의 배려는 결실로 돌아왔다. 세 사람은 장 사장 말에 무조건 “오케이, 오케이”를 연발하며 믿고 따른다. 덕분에 월급 주기도 버거웠던 공장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착한 사장님’으로 성수동 일대에 소문이 나자 함께 일하고 싶다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여기저기서 찾아오고 있다.
마르벨은 “우리 사장님, 나쁜 말 안 하고 삼겹살 잘 사줘 너무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서툰 한국말 탓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던 놀만과 크리스티나는 팔로 큼직한 하트를 그려 장 사장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장 사장은 “내가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다 내 식구 같다”며 “항상 ‘주는 만큼 받는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조영호 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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