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초년시절 제법 큰 특종성 오보를 한 적이 있다. 사회 이목을 끈 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이 피살 여인과 친분 있는 개척교회 목사를 지목, 뒤쫓고 있다는 기사였다.
사건 뒤 종적을 감춘 용의자는 아내가 자신의 행적을 경찰에 소상하게 진술한 것을 원망하는 글을 남겨 혐의가 굳어진 듯했다. 용의자 주변을 취재한 기자의 추궁에 경찰은 마지 못한 듯 수사상황을 확인해 주었고, 이 특종은 1면에 크게 보도됐다.
그러나 경찰이 용의자를 먼 산속 토굴에서 찾아내 조사한 결과, 범인으로 몰릴 것을 겁내 달아난 것이었고 알리바이 등 무혐의가 확인됐다.
■ 이 오보로 누명 쓴 이에게 백배 사죄하는 등 쓰라린 경험을 했다. '목사가 살인범'이라는 선정성에 미혹했다는 자책이 컸다. 경찰도 섣불리 공개하지 않는 마당에 특종 욕심이 앞섰으니, 평소 인권침해 수사를 나무란 게 부끄러웠다.
경찰이 내심 공개수배 효과를 노려 수사상황을 확인해 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자괴심을 크게 했다. 그 뒤 수사속보 경쟁이 늘 거북했던 것도 이런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다.
■ 그러나 10여년 뒤 데스크로 '교수 간첩단사건'을 다룰 때도 무고한 학자들에게 연루의혹을 씌운 기사를 걸러내지 못했다. 취재 기자들이 들이미는 기사를 외면할 용기가 부족했다.
결국 탈이 난 뒤 누명 쓴 여교수의 어머니에게까지 사죄하고 위무하려 애썼지만 지금도 그 이름만 보아도 스스로 초라해진다. 관련 법리와 냉전적 왜곡보도 탐구에 밝은 척 하면서도 선정적 오보를 했으니 민망한 일이다. 공안수사 당국이 과장과 왜곡을 유도했더라도 책임은 온전히 언론 몫일 수밖에 없다.
■ 이런 회한은 지난 대선 국면을 어지럽힌 병풍ㆍ총풍 사건에서 더해졌다. 이념과 개인적 선호를 떠나 황당한 의혹까지 함부로 전파해서는 안 된다고 되뇌었지만, 대권 향방을 놓고 모두가 분별을 잃은 상황에서 공연한 잔소리에 불과했다.
악의적 의혹보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보다 언론의 정직성이 실종된 것이 개탄스럽다. 그게 사회 전체가 이성 잃은 편싸움에 매몰된 요인이다.
세상이 돌고 돌아 이번에는 간첩사건을 놓고 사회와 언론이 일제히 공수 교대한 형세로 다투고 있다. 공안수사의 신뢰성을 영구히 좌우할 만한 사건이지만 언론 보도태도에 더 눈길이 간다. 국가안보보다 직업적 자긍심을 소중히 여기는 이기심일까.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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