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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여자의 심리학' 나르시시즘의 사슬을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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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여자의 심리학' 나르시시즘의 사슬을 끊어라

입력
2006.11.0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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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ㆍ강희진 옮김 / 북폴리오, 380쪽, 1만5,000원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는 마법 거울의 대답에 온 존재의 의미를 건다. 그에게 거울의 대답은 지극(至極)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절대의 심판이다. 심판대 위의 그는 거울의 노예다.

이야기의 지평을 넓혀 그 심판대가 이 세상이고 모든 타자의 시선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왕비의 삶 위에 포개보자.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심리에세이 <여자의 심리학> 은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처럼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 화려함과 초라함의 양 극단 사이를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방황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책의 원제는 <여성적 나르시시즘> 이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지만 속으로는 불안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이들, 그래서 끝내 자신의 참 모습을 타인에게도 제 자신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 “자존감이 자기 내면에서 조절되는 게 아니라 남들의 의견과 객관적 성공 등 외부세계에 의해 조종되”기 때문에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금세 무너지고 마는 불안한 자존감의 존재들, 이들 ‘자기애적 인격장애자’들이 여성적 나르시스트다.

이들은 스스로를 학대한다. 거식증이나 폭식증은 그 대표적 증상이다. 또 타자의 영혼을 착취한다. 외모든 지위든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과의 친분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에게 타자는 나르시시즘의 한 방편이며, 나르시시즘의 확장된 영역일 뿐이다. 거짓 독립심과 자아도취에 사로잡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진정한 관계를 거부하는 ‘남성적’ 나르시시즘과 달리, ‘여성적’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면서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필사의 공생관계를 추구한다. 허상에의 의존과 집착, 중독, 그리고 착각에 근거한 우월감과 열등감 속에서 방황할 뿐이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이다.

저자는 다양한 임상 사례와 이론적 견해를 제시하며, 거짓 자아가 벌이는 가면놀이의 원인과 양태들을 규명한다.

동화 속 백설공주는 왕궁에서 쫓겨난 뒤 사냥꾼의 배려로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난쟁이들의 집에서 휴식한다. 일곱 난쟁이의 침대에 모두 한 번씩 누워보고는 “너무 크지도 않고(우월감) 너무 작지도 않은(열등감) 침대를 찾아” 지친 몸을 누인다. 저자는 백설공주 동화에 빗대어 이 질긴 나르시시즘의 사슬을 끊는 법을 이야기한다. 유기(遺棄)체험과 분노의 소화, 공포와 절망과의 대면, 거짓 자아의 유혹(계모의 독사과…), 그리고 왕자와의 만남.

관계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과 영혼 전체가 파괴될 것 같은 바닥 체험을 할 때가 있다. 심리학자 플레밍의 말처럼 우리는 “그냥 그대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훨씬 더 많고 변화를 시도해야 할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지만, 그 한 가지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 변화의 길- 거짓 자아의 유혹을 떨치고 참 자아로 나아가는 길의 이정표로, 저자는 ‘공주 대접’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진정한 자립), 타인과 진지하고 건설적인 관계(진정한 의존)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의존은 자신의 한계를 잃지 않고 상대에게 자신을 맡길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은 자신과 타인에게 자기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전달하는 것이다.”(366~367쪽)

<백설공주> 는 공주의 행복한 결혼식에 초대된 왕비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두려움에 떨며 숯불에 달궈진 무쇠 구두를 신고 죽어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는 왕비! 나르시시즘의 소모적 갈망 위에 서서 지금 우리가 추고 있는 춤이 저 죽음의 춤은 아닌지. 이 책은 우리의 춤을 비춰볼 수 있는 잘 닦여진 거울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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