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링의 부활을 꿈꾼다.”
‘국민 영웅’김 일(77)씨가 지난달 26일 세상을 떠난 뒤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프로레슬링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현역선수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프로레슬러들은 쥐꼬리만한 경기수입과 관중이 외면하는 차가운 현실속에서도 옛날 화려했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김 일씨의 제자 이왕표(50)씨는 “스타 선수를 적극 발굴하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우리 프로레슬링만의 특성을 살리는 등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다시 인기를 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의 불씨는 살아 있다
3일 오전11시 경기 부천시 상동의 ‘이왕표 휘트니스 짐’ 옥상의 간이 링 위에서는 4명의 선수가 실전과 다름없는 연습에 구슬땀을 흘렸다. ‘꽈당’ ‘쿵’소리를 내며 100㎏이 넘는 거구들이 내동댕이 쳐질 때마다 링 바닥이 출렁거렸다.
프로레슬러치고는 작은 몸집의 안재홍(37)씨는 선배 노지심(48)씨와 함께 후배 2명을 독려하며 열심히 기술을 가르쳤다. 안씨는 “김 일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놓으셨다”며 “선생님의 뜻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며 가뿐 숨을 토해냈다.
안씨는 다른 종목 같으면 벌써 은퇴했을 나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프로레슬링연맹(대표 이왕표) 소속 선수 중 중고참에 불과하다. 이 바닥에서 뼈를 묻겠다는 후배들이 드물어 데뷔 14년차지만 겨우 막내를 면했다.
프로레슬링 입문 동기는 단순했다. 스무 살 무렵인 1989년 왜소한 체격을 키우기 위해 도장을 찾았다 빠른 몸놀림을 지켜본 이왕표씨의 권유로 인연을 맺었다. 그는 ‘김 일 같은’스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피나는 연습을 했다. 몸무게도 70㎏에서 90㎏까지 끌어올렸다.
1993년 데뷔한 그는 이듬해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현역시절 여건부(62)씨와 비교할만한 선수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스카우트됐다. 일본에서 선수생활은 황금기였다. 1년간 100경기를 소화했고 실력은 일취월장 했다. 빠르고 화려한 공중기술로 일본에서‘플라잉 안’이란 닉네임도 얻었다. 그러나 민족차별이 서러워 짭짤한 돈벌이와 남아 있으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1년 만인 95년 짐을 싸 귀국했다.
●쥐꼬리만한 수입, 부업은 기본
국내 현실은 더욱 망가져 있었다. 한때 300명이 넘었던 현역 선수는 당시 70명으로 줄어있었다. 레슬링왕국 일본과는 비교가 안됐다. 그나마 지금은 30명 정도만이 선수로 뛰고 있다.
우선 수입이 형편없다. 겨우 차비 수준을 넘는 경기수입을 손에 쥘 때면 ‘마대자루에 돈을 쓸어 담았다’는 선배들의 무용담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뿐이다.
현재 국내에서 한해 벌어지는 경기는 20회 남짓하다. 대부분 지방에서 열리고 관중도 수백 명이 고작이다. 관중이 없다 보니 흥이 나지않아 평소 자주 사용하는 기술도 실수를 하고 부상도 잦아진다.
어쩌다 관중이 많은 날이면 기분이 좋고 기술과 동작도 더욱 화려해진다. 선수들은 매 경기 그럴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링에 오른다. 마약과 같다.
안씨는 호텔 헬스클럽 부지배인이라는 직업도 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 경기수입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투잡’을 가져야 한다. 7년째다. 대부분의 다른 선수들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안씨는 “다른 일을 하면서 아침 저녁 빠지지않고 도장에서 훈련하는 동료, 선후배들을 보면 힘이 절로 생긴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호텔 직장에만 매달리기를 바란다. 수십 차례 뼈와 인대를 다쳤기에 항상 걱정이다.
●빠르고 현란한 기술 개발이 열쇠
안씨는 프로레슬링의 장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그는 “국내에도 미국과 일본처럼 전문 프로모터가 생기고 엔터테인먼트화에 성공하면 예전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며 “선수 저변확대와 국민관심, 방송중계등의 문제점이 하나씩 해결되면 다시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표씨를 중심으로 중국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안씨 등은 이미 5차례의 중국 원정경기를 가졌다. 한류바람이 거세고 불고 있고 격투기 종목의 대중 스포츠가 아직 없는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일본과 미국과는 차별화한 빠르고 현란한 한국형 프로레슬링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미국 프로레슬링의 인기에 따라 국내에 관련 인터넷 카페가 잇따라 개설되는 등 붐이 조성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프로레슬링 연습생 김민호(20)씨는 “미국의 프로레슬링을 즐겨 보다 레슬링에 빠지게 됐다”며 “스스로 택한 길인만큼 미국보다 더 화려한 기술을 갖추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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