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등 일급 배우들이 연기 성찬을 벌이는 흥행영화 <타짜> 에서 유독 잔영을 길게 남기는 배우가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전라도 최고의 전문 도박꾼 아귀 역의 김윤석(38). 그는 불륜을 저지르고도 한치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문제적 유부남 하동규 역을 맡아 MBC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 의 시청률을 20%대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연극배우 출신으로 지금까지 이룬 성과보다 앞으로의 결과가 더 기대되는 그는 “올해는 경사가 겹쳐 연기할 맛이 난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있을> 타짜>
-연기는 언제, 어떻게 입문했나.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대학(동의대) 전공도 독문학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매일처럼 휴교령에 막걸리나 마시고 무료하기만 했다. 그 와중에 연극 동아리 활동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모여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가입했고, 그것이 내 연기인생의 시작이다. 졸업 후 부산에서 극단 생활을 하다 서울로 옮겨 연우무대, 학전 등을 거쳤다.”
-연극을 도중에 그만둔 적이 있다던데.
“1992년 불현듯 연기가 하기 싫어졌다. ‘불효 자식 소리까지 들으면서 악다구니 쓰며 해야 하나’하는 회의감에 5년간 미련 없이 쉬었다. 그 시절 카페를 경영하면서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이 연기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덕분에 치기 어렸던 연기도 많이 숙성됐다.”
-부모님 반대가 심했나.
“연극한다면 좋아할 부모 아무도 없다. 포스터나 붙이러 다니고 ‘거지 꼬라지’로 집에 들어오면서 장가갈 생각도 안 하니 좋아하셨겠나. 하지만 요즘은 우리 아들 최고라 하신다. 특히 TV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신다.”
-아귀의 인상이 강렬하다. 어떤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나.
“아귀는 같은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을 정도로 섬뜩한, 평생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 원작에는 묘사돼 있지 않지만 분명 어려서 죽음을 목격했을 것이고, 의리를 지키다 배신까지 당한, 정글의 법칙을 온 몸으로 겪은 인물로 설정했다. 기 싸움이자 심리전인 화투판에서 단련된 사람이니 굉장히 여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귀 역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허영만 만화 마니아라 기분이 좋았다. 최동훈 감독 작품에 출연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부산 출신이라 아귀 역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날 보며 아귀를 떠올릴 사람은 최 감독 밖에 없다. 역시 대단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귀의 라이벌인 경상도 짝귀 역의 주진모는 내가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 생각할 만큼 좋아하는 선배다.”
-송강호와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아는데.
“친구다. 송강호는 서울 올라와서 만났다. 3년 정도 같이 연극 무대에 올랐다. 내 자취방에서 거의 살 정도로 친했다. 연극 그만두고 쉴 때 강호가 돌아오라고 설득도 많이 했다.”
-하동규는 악역이지만 악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의도했던 연기다. 뼈 속까지 절절히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 자기가 악한지도 모르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애 같으면서도 천성이 나쁘지 않은 다면화한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악역 이미지가 굳어질까 부담스럽지 않나.
“전혀 부담 없다. 다들 좋아하지 않나. 하동규는 나쁜 놈인데 이상하게도 아줌마들이 그리 좋아한다. 식당에 가면 김밥 한 덩어리라도 더 주려고 한다. 연기는 캐릭터 싸움이다. 악인이라도 캐릭터가 각각 틀리니 연기하는 재미가 있다.”
-다음에 맡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 정독 할 시간이 없어 아직 출연 결정을 못 내렸다. 드라마는 당분간 쉬고 싶다. 현실에 밀착된 영화를 하고 싶다. 지금 시대의 모습을 담은 영화라야 내가 죽어서도 사람들이 봐주지 않겠나. 의미 없는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 장르에 대한 욕심은 없다.”
-앞으로 더 비중있는 역할을 맡을텐데.
“아무대로 비중이 커지겠지만 역할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그 역할을 자신 있게 소화할 수 있느냐 하는 점도 중요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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