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이맘때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었다. 여행 준비를 하며 갈등이 컸다. 유럽은 춥다던데, 호텔에 난방도 충분히 안 한다던데, 앞으로 나날이 더 추워질 텐데. 도저히 떨칠 수 없는 추위 공포 때문에 여행의 즐거움이 80퍼센트는 줄어드는 듯했다. 그래서 난 전기담요를 챙겨가기로 마음먹었다.
잠이라도 따뜻하게 자야지. 그런데 아무리 작은 전기담요라도 부피가 만만치 않았다. 그걸 여행가방에 넣으려면 여벌의 두툼한 옷들을 포기해야 했다. 망설이다 옷을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잠자리에서 정 추우면 옷을 껴입고 자자고. 그리고 등산용 침구의 하나로 보온효과가 크다는 은박지 덮개를 구했다. 초박형으로, 펼치면 퀸사이즈지만 접으면 한 줌 크기도 안 되는 그 아이디어 상품을 가방 한 구석에 넣으니 좀 든든했다.
이베리아반도는 전혀 춥지 않았다. 그래서 기회가 없다가 고속도로 옆의 모텔에서 묵은 어느 한 밤, 약간 쌀쌀한 듯도 해서 드디어 비장의 그 초박형 침구를 꺼냈다. 성가실 정도로 바스락거리던 그 덮개는 잠에서 깨어보니 침대 밑에 떨어져 있었다. 아무렇게나 개켜 렌터카 트렁크에 던져두고 잊었던 은박지 침구,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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