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군사독재의 후유증으로 부정부패와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이 지역을 자신들의 뒷마당으로 여기는 미국엔 매우 골치 아픈 문제였다.
1990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는 이들 국가의 경제위기 해법으로 세제개혁, 무역ㆍ투자 자유화, 탈규제화 등 10가지 정책을 제시했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정책들이다. 이후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의 대명사가 된 워싱턴 컨센서스는 동구 사회주의국가 체제 전환과 1990년대 후반 아시아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주요 개혁정책으로 채택됐다.
▦ 2004년 워싱턴 컨센서스에 도전하는 용어가 등장했다. 바로 베이징 컨센서스다. 골드만 삭스의 고문이며 중국 칭화(淸華)대 겸직교수인 라모(Joshua Cooper Ramo)가 처음 개념화했는데, 정치적 자유화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시장경제적 요소를 최대한 도입하는 중국식 발전국가 모델을 뜻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정권 도미노를 부른 원인으로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패가 지목되면서 베이징 컨센서스가 그 대체재로 부상했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가들이 베이징 컨센서스를 선호해 워싱턴 컨센서스를 앞세운 미국의 세계 경영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 중국_이집트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어제부터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_아프리카 협력포럼은 아프리카로 뻗어가고 있는 베이징 컨센서스의 기세를 잘 말해 준다.
아프리카 53개국 가운데 48개국의 정상이 참가했다. 중국으로선 에너지 확보가 주 목적이지만 경제협력, 의료 지원 등을 통해 중국적 가치를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심어주는 부수 효과가 크다.
중국은 이번 포럼을 계기로 아프리카 31개국의 부채 100억 달러를 탕감해줬다. 1만 명이 넘는 인재들에게 교육기회 제공, 아프리카 49개국에서 진행 중인 720여 개의 개발프로젝트 등 중국의 아프리카 껴안기 리스트는 끝이 없다.
▦ 전문가들은 중국의 연성권력(소프트 파워)으로서의 베이징 컨센서스 영향력에 주목한다. 조셉 나이 미 하버드대 교수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비롯한 중국의 소프트 파워의 확산을 경계하며 미국의 전략적 대응이 긴요하다는 글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했다.
베이징 컨센서스는 중국의 발전 경험을 정리한 것으로 구체성이나 실천성 면에서 위싱턴 컨센서스에 뒤진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내정 불간섭의 원칙 아래 권위주의체제를 인정하면서 발전전략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진국 공략에 훨씬 유리하다.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중국의 소프트 파워에 전율을 느낀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