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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비평] 케이블 TV의 약진,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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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비평] 케이블 TV의 약진, 그러나…

입력
2006.10.3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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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케이블 TV의 약진이 눈부시다. 2006년 4월 현재, 1,700만에 달하는 국내 전체 TV시청 가구 중 80%인 1,400만 가구가 케이블TV를 보고 있으며, 시청점유율도 지상파 TV에 버금가는 수준인 42%에 달한다(중앙일보 10월 28일자 인터넷판). 비록 IPTV로 대표되는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의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케이블TV가 이미 확보한 입지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수치들은 잘 보여준다.

시청자들이 특정 기업이나 상품 광고를 지상파 TV에서 봤는지 케이블 TV에서 봤는지 헷갈릴 정도로, 이제 케이블 TV는 효과적인 광고매체로도 점점 인정받는 추세다.

지상파 TV의 시대는 가고 케이블 TV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알리는 징후들은 이 밖에도 여럿 있다. 우선 세분화하고 세련된 시청자들의 취향에 딱 맞게끔 편성되는 양질의 외화시리즈들은 콘텐츠 면에서 케이블 TV가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를 보여준다. 또 한 가지는 채널의 다양화다.

그것도 지상파 계열 PP처럼 단순히 지상파 TV의 인기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들을 재방송하는 수준에 그치는 채널이 아니다. 시청자들의 마음에 뚜렷하게 포지셔닝된 채널들-예를 들면 여성전문 채널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온스타일-이 케이블 TV 대표 채널로 떠오르고 있고, 한편에서는 웬만큼 자체 제작 능력을 갖춘 채널들도 나타나고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tvN이다.

CJ미디어가 새로 론칭한 tvN의 자체 제작 비율은 거의 5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자체 제작 편수나 비율이 아니라 내용이고 질이지만, tvN이 마치 불을 당긴 듯 채널CGV와 OCN같은 대표적인 케이블 채널들도 질세라 수십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한 '자체 제작' 드라마를 홍보하고 나섰다. 그런데 바로 그 드라마들이 촉발시킨 논란이, TV 방송의 역사에선 해묵은 이슈인 '선정성'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지상파 TV가 사회에-특히 여성과 어린이에게-미치는 대표적 해악이 바로 프로그램의 '선정성'과 '폭력성'이란 주장은 지난 수십 년간 개진돼 왔으며, 미디어 학자들은 그 상관관계 내지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꾸준히 연구해 왔다. 예전에 지상파 TV에 가해졌던 비난이 이제 고스란히–그리고 한층 더 높은 강도로-케이블 TV에 가해지는 것을 보면서, TV 방송의 무게 중심이 케이블 TV로 기울고 있음을 느낀다.

케이블 TV의 선정성과 폭력성은 다양한 지점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선 홈쇼핑 채널들은 밤늦은 시간이면 어김없이 이국적인 외모의 외국인 여성 모델들을 전면에 내세워 여성 속옷을 판다.

외국인 여성 속옷 모델들의 늘씬한 육체는 말하자면 대부분의 남성 시청자들에게 성적 판타지를 제공하는 기제라 할 수 있다. 또 동일한 심야 시간대 대부분의 케이블 채널들이 방영하는 싸구려 B급 영화들이나 수준 낮은 'TV용 영화'(made-for-TV movies)들 역시 벌거벗은 외국 여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주느라 여념이 없다.

한국의 케이블 TV가 '자체 제작'한 드라마와 '섹시 버라이어티 쇼' 덕분에 외국 영화 못지않은 노골적인 섹스 신과 민망할 정도로 출연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하는 장면들을 얼마든지 감상하고, 외국 여배우 못지않게 가슴을 다 드러낸 한국 여배우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케이블 TV에 있어 폭력은 수년 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등장한 프로레슬링 이후 현재의 K-1이나 프라이드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시각적 스펙터클'로 전화(轉化)해 발전해왔다.

인간의 야수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스포츠 프로그램들 한 켠에는, 이젠 흔해져 버린 소위 '때려 부수는'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들이 포진하고 있고, 또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잔혹한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이 있다.

"지상파에선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란 것이 왜 이렇게 한층 더 선정적인 톤이나 폭력적인 형태로만 표출돼야 하는 것인가. 우리 시대의 케이블 TV가 촘촘하게 쳐놓은 선정성과 폭력성의 그물을 피해가는 것이 지상파 TV가 우리의 문화적 감수성을 지배하던 그 시절에 비해 너무나 어렵게만 느껴진다.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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