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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리산에 가시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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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리산에 가시려거든

입력
2006.10.3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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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 아래 떡시루를 엎어놓은 듯한 왕시루봉이 흘러내리다 섬진강과 만나는 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100여 가구가 기름진 황금들판에 뿌리박고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최근 이곳에 들렀다가 우연히 젊은 부부를 만났다. 5년 전 이 곳에 터를 잡은 이 부부는 농사를 짓고 차도 덖으며 살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갖고 알콩달콩 살았던 부부가 여기에 오게 된 계기는 남편이 두 팔을 잃게 된 사고였다. 이들이 겪었을 충격과 절망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리 저리 방황하던 부부는 지리산에 건강하게 뿌리를 내렸다. 부부는 야생녹차를 따서 말리고,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면서 애틋한 사랑을 나누어서 그런지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이들은 도시에서 살 땐 몰랐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 뜨고,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리산의 품에 안겨 사는 사람이 어디 이 뿐이랴. 이 마을 뒷편 산 중턱에는 이원규(44) 시인이 빈 집을 빌려 9년째 머물고 있다.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사표를 내고 부인과 함께 '입산'한 그는 지금도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산하를 떠도는 자유인이다.

그는 "간간이 쓰는 글의 원고료와 녹차 만드는 일을 도와주고 받는 돈만으로도 사는 데 어렵지 않다"든가 "서울에서 집 한채 팔고 내려오면 10년은 놀고 먹을 수 있다"는 말로 도회의 신산한 삶에 지친 사람들을 은근히 꼬신다.

이곳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고 싶어 전원마을을 만들고 있는 직장인도 있다. 50대 초반의 그는 지리산을 40여번 종주한 끝에 뼈를 묻을 곳으로 이곳을 선택해 10년 가까이 준비한 끝에 조만간 꿈을 이루게 된다. 봄이면 노랗게 흐느끼는 산수유에 파묻히고 야생녹차를 따고, 가을이면 향긋한 송이를 거두며, 하고 싶은 등산 실컷 하면서 보내는 게 그의 오랜 꿈이라고 한다.

이처럼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듯한 상처를 입거나, 영혼의 안식을 바라는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달래고 기꺼이 안아주는 엄마의 아늑한 품으로 언제나 포근하고 넉넉할 것 같았던 지리산이 신음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만 80만명이 찾으며 노고단 아래가 민둥산으로 변하고 생전 나지 않던 산사태까지 발생했다.

계곡마다 잇달아 들어서는 모텔과 펜션, 별장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도 곳곳에서 속살을 헤집고 땅을 고르는 굉음이 끊이지 않는다. 깊은 계곡으로 들어갈수록 땅값도 뛰어 투기조짐까지 있다.

전두환 정권이 '좋은 경치를 많은 사람이 구경할 수 있도록 냈다'는 성삼재 관통도로(25㎞)는 심각한 오염원이다. 하루 5,600대가 다니는 이 도로 때문에 생태계가 단절되고 귀화식물이 늘어나고, 야생동물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니 '지리산 지킴이' 이원규 시인의 호소가 더욱 간절하게 들린다.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지리산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며 살고있는 우리가 기댈 언덕이다. 모두가 머물고 싶은 고향이다. 지리산에 가시려거든 모든 걸 내려두고 몸만 가시라.

최진환 사회부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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