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수물학회에 뿌리를 둔 대한수학회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수학회는 27~29일 서울대 상산수리과학관에서 6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수학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한국 수학의 역량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한국 수학의 발전상
대한수학회 민경찬 회장(연세대 수학과 교수)은 "우리나라의 수학 연구능력이 2000년대 이후 몰라 볼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8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세계수학자연맹(IMU) 총회에서 김정한(연세대), 오용근 황준묵(이상 고등과학원) 교수 등이 강연자로 초청됐다.
4년마다 열리는 IMU 총회는 수학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또 천정희(서울대) 교수는 유럽암호학회의 개막강연자로 선정되는 등 각 분야 리더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수학자들이 생기고 있다는 게 가장 눈에 띈다. 더욱이 미국 <애널즈 오브 매스매틱스> , <미국수학회보> , 스웨덴 <악타 매스매티카> 등 유수의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악타> 미국수학회보> 애널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등에서 진작부터 상위권에 속했지만 경시대회 실력이 곧 창의적인 수학연구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IMU는 회원 국가의 수학실력을 최하 1그룹에서 최고 5그룹으로 성적을 매기는데 우리나라는 덴마크 이집트 등과 함께 2그룹으로 중하위권이다. 8월 총회에서야 젊은 수학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3그룹으로 상향조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등급 상향은 회원국들의 이메일 투표로 결정된다.
수학만큼 실력을 자로 잰 듯 냉정하게 객관화하는 분야도 없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수학교수를 임용할 때 전문가들로부터 추천을 받으면서 "전공분야에서 이름난 연구자의 이름을 들고, 그와 비교해 어디쯤 속하는지 체크하라"는 식으로 냉정한 추천서를 요구한다.
광복 직후 수학사의 천재들
서울대 수리과학부 김도한 교수는 "광복 직후 수학을 공부한 학자들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세계적 저널에 논문을 싣는 등 천재성을 과시했다"고 말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빛을 낸 수학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광복 전후 수학을 공부한 고(故) 이임학·임덕상 박사다. 경성제대 물리학과를 다니며 독자적으로 수학을 공부한 이임학 박사는 1947년 남대문시장 헌책더미에서 수학 저널을 보고 수학자 M 조른(Zorn)이 "답을 알 수 없다"고 한 문제를 단숨에 풀어 보냈다.
조른은 그의 논문을 미국수학회보에 전달, <조른의 문제> 라는 제목으로 게재되게 했다. 그는 대수 분야에서 리(Ree) 그룹이라는 유한군을 발견, 이름을 남겼다. 조른의>
임덕상 박사 역시 '림(Rim)의 정리'로 수학 교과서에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5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대수기하 분야에서 연구하며 대수적 K-이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등 업적을 남겼다.
수학은 장기적 관점에서 육성해야
현대 과학에서 수학이 다소 외면당한 데에는 산업화와 직접 연결되기 어려운 기초학문이었다는 이유가 크다. 60~70년대 박정희 정권이 과학기술자들을 우대하고 지원하며 한국 근대화의 브레인으로 삼았지만 수학에 대한 지원은 최근까지도 소홀하기 그지 없었다.
민경찬 회장은 "수학에 대한 정부 지원은 물리 화학 등에 비하면 4분의1에서 6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90년대 이후 과학기술부의 과학연구센터(SRC) 지원과 고등과학원 설립, 교육인적자원부의 두뇌한국(BK)21사업 등이 현재와 같은 수학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수학은 산업화가 불가능하다기보다 언제 어디에 적용될지 모르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수학에서는 발견된 지 수백년이 지나 산업화에 성공하거나 다른 학문에 적용되는 일이 흔하다. 전자결제나 컴퓨터단층촬영(CT)의 3차원 영상기술 등은 수학에서 암호론이나 편미분방정식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쉽게 보급되지 못했다. 그만큼 긴 호흡으로 수학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학적 국민성이 나라 발전시킨다"
대한수학회는 60주년을 맞아 '수학장기발전계획'을 수립, 21세기 수학의 영향력을 떨치기 위한 가시적인 행보를 내딛고 있다. 민 회장은 "우리 수학회도 금융리스크관리협의회와 협력해 외국처럼 파생금융상품을 개발하는 등 앞으로는 산업분야와 긴밀한 교류를 갖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생금융상품이란 주식 채권 외환 등 기초자산 자체를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가치가 변하는 것을 예측해 거래하는 옵션 등과 같은 파생상품으로 다양한 위험을 계산하고 해석해 내는 수학 방정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뿐만 아니?수학자들은 국민들이 보다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도 수학적 감각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울산대 수학과 장선영 교수는 "수학을 전공한 이들은 '사람이 재미없다'는 평은 들을지언정 허황되게 사는 이들은 본 적이 없다"며 "수학의 대중화는 국민들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 선진국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