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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줄에 갇힌 운보의 예술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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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줄에 갇힌 운보의 예술魂

입력
2006.10.2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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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운보의 집’. 입구에 들어서자 곳곳에 쳐진 금줄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흰색 비닐 끈으로 된 금줄은 200대 수용 규모의 주차장부터 조각공원, 인공연못 등 주요 시설을 휘감고 있어 볼썽사나웠다. 운보의 집 안내판과 이정표까지 칭칭 감고 있는 금줄에는 예외없이 ‘무단출입시 형사고발 조치함’이란 경고문이 붙어있다. 온갖 자연석과 조형물이 가득한 조각공원은 잡풀로 뒤덮여 마치 폐허같다.

충북 청원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공간인 ‘운보의 집’이 방치돼 흉물처럼 변하고 있다. 이 집은 한국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이 20여년간 예술혼을 불태우며 꾸며놓은 대규모 문화예술 타운. 2만 7,000여평의 아늑한 산자락에 전통 한옥과 정원, 조각공원, 미술관, 도예관 등이 어우러져 산수화 같은 경관을 자랑한다.

하지만 몇 달 사이 곳곳에 출입금지 경고문이 나붙었고, 주요 시설의 문도 굳게 닫혀있다. 연못 앞에서 만난 60대 부부는 “출입경고 문구를 보니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에 이게 무슨 짓이냐?”며 발걸음을 돌렸다.

운보의 집에 금줄이 쳐진 것은 5월 중순께. 지난해 경매로 전체 부지 가운데 7,800여평을 매입한 H씨(서울 거주)가 자신 소유의 땅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쳐 놓은 것이다. 이 때부터 운보의 집은 마땅히 주차할 곳도 없고, 관람 시설도 크게 줄어들었다.

관람객도 급격히 줄고 있다. 운보의 집에 따르면 예년 같으면 평일 1,000여명, 주말 휴일이면 2,000명에 이르던 관광객이 요즘에는 주말에도 10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연중 펼쳐지던 사생대회와 전시회 등도 차질을 빚고 있다. 매년 7,8월 전국 초 중학생을 대상으로 여는 ‘운보 문화예술체험 여름캠프’가 올해 전격 중단됐다. 지난 달에는 ‘운보전국미술대회’와 장애ㆍ비장애 화가 공동의 ‘함께 그리는 미래 1+1=人전’이 열렸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썰렁하기만 했다. 수시로 선보이던 야외 소공연과 연주회는 아예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운보의집이 파행 운영은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는 게 지역 문화예술계의 지적이다. 운영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지적재산권 등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운보의 집은 비영리 법인인 운보문화재단이 전체적인 운영을 하고, ㈜운보와사람들이라는 영리 법인이 재단측과 지적재산권 계약을 맺어 운보 캐릭터 개발 등 문화산업을 해왔다. 그러나 운보와사람들이 경영난을 겪고, 이 회사에 투자했던 금융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운보와사람들 소유의 땅이 경매에 부쳐졌다. 이를 낙찰받은 H씨는 지적재산권을 요구하며 금줄을 치기에 이르렀다.

청주 미래도시연구원 이 욱(52) 사무국장은 “운보의 집은 누구나 자유롭게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곳으로 남아야 한다”면서 “사유화를 막기 위해 자치단체 등 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형동리 주민 100여명은 곧 ‘운보의 집’ 조속한 정상화를 바라는 호소문을 작성해 문화관광부와 충북도, 청원군 등 관계 기관에 보내기로 했다.

청원=글ㆍ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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