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운동권 출신 지하조직 ‘일심회’ 사건의 여파가 정치권과 시민단체, 노동계로 번지고 있다. 일심회가 국내 동향 파악을 넘어 반미투쟁을 선동하고 선거 등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한 정황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일심회가 2002년 1~10월 환경단체를 끌어들여 반미투쟁을 하려 했다는 내용의 보고 문건을 확보했다. 28일 구속된 일심회 조직원 이진강씨의 영장실질심사에서도 같은 취지의 내용이 언급됐다. 검찰은 이씨에게“환경운동가 김모씨를 조직원으로 묶겠다는 결의를 장민호씨에게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공안당국은 현재 김씨가 속한 환경단체가 용산 미군기지 기름유출 사건과 미군 반환기지 환경오염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던 것이 일심회와 관련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의 변호인단은 “이씨는 김씨와 20년 전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서로 가끔 안부를 묻는 관계일 뿐”이라며 “김씨는 시민운동에 대한 확신이 강해 주사파가 되기 어려웠다”고 반박했다.
다른 시민단체로 수사의 불똥이 튈 수도 있다. 공안당국은 일심회 연루자들이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와 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 촛불시위에 적극 간여했던 점을 주목하고 있다. 공안당국은 일부 시민단체가 국가보안법 폐지 및 한ㆍ미 FTA(자유무역협정)반대, 맥아더 동상 철거시위 등 반미 운동에 한 목소리를 내는 배경에 친북단체가 있다는 의심을 감추지 않았다.
일심회 보고문건에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노당이 열린우리당에 표를 몰아줘 한나라당 후보 당선을 막는 방안, 민노당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렸던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안 처리와 관련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훈 전 중앙위원, 최기영 사무부총장 등 일심회 소속의 민노당 전ㆍ현직 간부가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들이다.
국정원이 일심회 조직원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 386 인사들로 수사를 확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안정국을 이용한 마녀사냥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속된 조직원들은 일심회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예전의 공안사건처럼 ‘기획 수사’ 논란이 재연될 여지도 크다.
하지만 국정원이 1년 넘게 일심회 조직원들을 감청, 미행해온 데다 조직원 자택 압수수색 때 이들의 간첩 행위를 뒷받침하는 물증을 확보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수사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
현재 국정원은 장씨가 작성한 암호 보고문을 추가로 분석하고 있다. 암호문의 내용에 따라 이번 사건이 몇몇 386의 단발성 간첩사건에 그칠지, 아니면 386세대 출신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인사 등을 포함하는 최대 규모의 간첩단 사건이 될지가 가려질 전망이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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