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수사중인 간첩 사건이 알려지면서 386세대 정치인들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공안당국이 ‘고정간첩’으로 지목한 장민호씨와 직간접적인 연계가 없었더라도 ‘386’, ‘운동권’, ‘전대협’이라는 상징 때문에 이들이 갖는 부담은 적지 않다.
현재로선 이번 사건의 불똥이 386세대 현역 의원들로까지 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관측이 우세하다. 장씨의 경우 정치권 인맥이 두텁지 못했고, 그가 접촉했던 민주노동당의 최기영 사무부총장이나 이정훈 전 중앙위원 등도 열린우리당의 386 의원들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최 부총장이 전대협 4기 때 사무국장을 지내긴 했지만, 이후엔 노동운동에 투신해 제도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의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당의 한 386 의원은 “전모가 드러나봐야 알겠지만 ‘386세대=운동권=간첩’이라는 등식이 일반화하지 않을까 솔직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전대협 의장을 지낸 임종석 의원도 “단순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인지 조선노동당 가입 등 국보법 위반이 있었는지 조속히 밝혀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여당 386 인사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까진 제도정치권 내에서 민노당의 전ㆍ현직 간부만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음에도 우리당 내에서까지 이 같은 우려가 나오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장씨의 메모에 한나라당 전 의원 보좌관의 이름이 나왔을 정도로 과거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공유한 386세대가 정치권에 폭 넓게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전대협을 통해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NL(민족해방)계열의 다수는 ‘주사파’와는 거리가 있다. 물론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PD(민중민주)계열과 달리 NL계열은 통일운동을 중심에 놓으면서 잇따른 방북활동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주사파가 일부 활동했었다. 그러나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의원 등 386세대의 대표격인 전대협 1~3기가 활동할 당시는 운동권 내에서 주사파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전이다.
현재 386 운동권은 우리당과 민노당은 물론 민주당과 한나라당에까지 분포하고 있다. 상당수는 당직자나 보좌진으로 활동하고 있고, 일부는 의원이 되기도 했다. 대체로 NL계열 다수파와 PD계열 온건파였던 이들은 우리당에 집중돼 있다. 반면 민노당은 NL계열 소수파와 PD계열 강경파가 연합해서 당을 구성하고 있고, 이 때문에 민감한 안보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정파 갈등이 끊이질 않는 게 현실이다. 민노당 내부에서 이번 사건이 불거진 뒤 “일부 주사파가 진보정당을 말아먹고 있다”는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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