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연극평론가들에게 특별한 주간이었다. 아시아 최초로 국제연극평론가협회 총회를 서울에서 열게 되어 세계 각국에서 90여명의 평론가들이 참석했고, 올해 처음 제정된 탈리아상 시상식도 그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특히 올해의 수상자가 20세기 연극평론의 거장이고 한국 연극평론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에릭 벤틀리 선생이라 - 더군다나 그는 자기 주장이 강한 구십 노구의 할아버지다 - 많지 않은 인력으로 주최측이 신경 쓸 일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 벤틀리와 여석기의 만남
탈리아상 시상식은 수요일인 25일에 진행되었는데 십여년째 비평을 하고 있고 최근엔 모든 것이 시큰둥하게 느껴지는 슬럼프에 빠져있던 나에게도 인상적인 자리였다.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어하시고 손을 자주 떨던 벤틀리 선생의 노구, 그럼에도 장문의 수상소감을 마련할 정도로 꼬장꼬장한 대가의 저력에 감복한 탓도 있고, 이제 이런 큰 행사를 치를 정도로 한국 연극비평의 위상이 커진 것에 대한 감회도 작용하였다.
식민지시대 도쿄 유학을 다녀왔던 젊은 엘리트들이 주도한 적은 있지만 전쟁 이후의 역사를 감안할 때, 한국에서 제대로 된 연극비평의 역사는 반세기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그 시상식에는 한국 연극비평의 1세대인 여석기 선생도 나오셔서 젊은 시절에 자신을 매혹했던 벤틀리 선생의 글솜씨를 들려주기도 하셨다. 벤틀리보다 몇 살 아래라는 팔십 노장의 그 감회 어린 연설을 들으면서, 나는 전후 복구의 가난하고 참담한 시절에 벤틀리의 글을 읽던 한국의 문학청년을 상상해 보았다.
그때 그는 자신이 한국 연극평론의 출발점에 선 것을 예감했을까. 사재를 털어 '연극평론' 지면을 창간하고 후배 평론가들에게 글 쓸 통로를 만들어 주리라는 것을,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의 후배들이 마련한 자리에 은발이 된 벤틀리와 이렇게 만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알 수 없는 인연의 힘!
그날 또 하나의 축하연설을 했던 돈 루빈은 벤틀리 선생의 어록을 빌려 연극비평가가 되기 어려운 것은 한평생 적을 만들어야 하지만 제대로 된 영향력은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청중을 웃겼다.
문득 나는 한평생 예술가들을 평가하느라 사방이 적이었을 벤틀리 선생과 내 동료들, 그렇지만 광야에서 혼자 떠들듯 아무리 글을 써도 연극이 좋아진다는 확신을 주지 않아 한평생 무력할 그들의 인생이 떠올라 웃음 끝에 명치가 시큰해지기도 하였다.
● 우리는 서로를 퍼 올리는 두레박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 영향력도 없겠는가. 비록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영향력이 당대에 제대로 행사되지 않더라도 벤틀리 선생의 글을 읽던 한국의 문학청년처럼 혹은 그 문학청년이 내 선배와 나를 퍼 올리던 두레박이었던 것처럼,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북돋우고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고독한 모든 연극평론가들이여 그리고 지상의 모든 무력한 존재들이여, 기운들 내시길.
벤틀리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김명화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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